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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도니 Aug 05. 2024

엉망진창 여행과 친절한 세상(1)

1. 엉망진창 여행

여행 가기 전날 항공권, 숙소를 예매한 사람?! 네 여기 있습니다! 8월 초 극성수기, 여행 전날 항공권과 숙소를 모두 예매했다. 물론 전날 여행 갈 생각을 한 건 아니었고, 그 주에 여행 갈 생각을 했는데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출국 전날 도쿄행이 결정 났다. 사실 도쿄가 아니라 올림픽 중인 파리가 가고 싶었지만 3박 4일은 무리였고, 그럴 바에야 그냥 집에서 넷플릭스나 볼까 싶었는데 재미있어 보이는 게 없었다. 넷플릭스에 볼만한 것만 있었어도 여행은 안 갔다. 진심. 그렇게 일본에 오후 비행기로 도착했고, 그때부터 나의 바보짓이 시작됐다.


1. 나는야 축산물 관계자


동물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님 말고

출국장에 나와서 휘뚜루마뚜루 면세점이나 구경할까 하는데 날아온 문자. 축산물관계자는 가축질병발생국으로 출입국시 신고를 하세요. 네? 제가 소를 키우나요, 돼지를 키우나요? 제가 할 줄 아는 건 둘 다 먹는 거뿐입니다만? 출국장 인포메이션데스크에 얼굴이 하얘져서 가서는 거짓말 1도 안 하고 “저 축산물 관계자라고 문자 왔어요? 어떡해요??”, “축산물 관계자세요?”, “아니요. 먹을 줄 아는 것 밖에 몰라요!”, “아. 네^^ 무슨 일 하는데요?”, “약사요!”, ”아 가끔 그런 경우 있어요. 저기 가서 저거 쓰시면 되세요. “ 그렇게 강제 소고기, 돼지고기 먹보 인증.



2. 비행기 연착과 나리타 공항의 무간지옥


나리타 공항을 빠져나오다 내 정신도 빠져나올 뻔했다. 우선은 출발 편 비행기 연착부터. 비행기가 출발 시각을 지났는데도 움직일 기미가 없다. 누구야 체크인하고 안 온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기내 방송으로 관제탑에서 오케이 사인 뜰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란다. 기장님 저 지금 자고 싶은데 옆자리 맞은편으로 앉은 승무원 때매 어색하단 말이에요.


그렇게 도착한 나리타, 좀 늦게 도착했네 싶었는데 아뿔싸 나리타 입국줄 너무 길어. 입국심사 카드 쓰고 줄 한 시간을 섰다. 그렇게 출국 수속을 밟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 홀로 외롭게 돌고 있는 케리어를 찾았다. 진짜 다 끝이야 나리타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서 도쿄로 갈 거라고 도쿄! 그렇게 케리어를 끌고 면세품 신고증을 써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뭐 산 것도 없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패스 트루하려다가 붙잡힘. “QR 했니? “ ”아니오.  근데 아무것도 산 거 없어요. 신고할 것도 없어요. “ 아저씨는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눈빛이었는데, 물론 아닐 수도 있고, 근데 맞을 거다 왜냐면 밤이었고, 아저씨도 퇴근하고 맥주 한잔하고 싶겠지.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기둥을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 노란색 종이를 흔드셨다. 하는 수 없이 기둥으로 가서 아저씨가 흔든 노란색 종이의 빈칸을 메꿔서 아저씨한테 들고 갔다. 그리고 다시 줄을 서는데 아저씨가 앞에 줄 선 외국인들에게도 내게 한 것처럼 노란색 종이를 흔들고, 기둥을 가리 켰다. 이봐 나리타가 쉬운줄 알아? 안 되지, 안 될일이야. 이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졌다. 익스프레스기차는 삼십 분 뒤인데, 환전도 해야 하고 가능할까?



3. 쇼미 더머니


트레블월렛으로 나리타 공항에서 돈을 뽑아야지가 오리지널 계획. 음 잠시만,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보자 보자… 비밀번호를 다양한 조합으로 한 다섯 번쯤 시도했다. 그러다 카드가 아예 막힐 거 같아서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유후 진짜 뭐 같은 상황인데 이거? 아 인천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어. 그래도 영혼을 팔기 전에 조금만 더 집중해 보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사고의 중간중간에는 다 찰진 욕이었음은 당연하고. 아 그렇지 트레블월렛 어플로 카드 비번을 바꾸자! 그렇게 카드 비번을 바꾼 다음 바꾼 비번으로 인출 버튼 누르기. 그런데 이번에도 현금은 안 나오고 무슨 영수증만 나왔다. ‘유효기간이 만료된 카드입니다.’ 그럴 리가. 이거 작년에 만들었는데? 집에 있을 걸 왜 나와서 이 멍청이 짓이지. 젠장젠장젠장젠장. 이 시간에 트레블월렛이 전화를 받을까. 이젠 진짜 마지막이야. 다시 트레블월렛 어플을 켜서 전화를 해보려는 순간 실물 카드 활성화가 꺼져 있었다. 활성화 버튼을 누르고 돈을 뽑았다.


4. 익스프레스 기차 못 탐


나리타에서 노숙할뻔했다.

ATM 앞에서 씨름하느라 타야 하는 마지막 기차 못 탔다. 그래서 천 엔 더 주고, 더 오래 타고 심지어 환승도 해야 하는 기차를 탔다.


5. 차를 주세요


맛차와 녹차. 둘다 맛있다. 사진은 물론 이날 찍은 게 아니다.

예약한 호텔은 도쿄타워 근처의 차로 유명한 호텔. 호텔은 체크인할 때 오전 9-3시까지 무료로 마차와 녹차를 제공한다고 했다. 좋아 여행 전에 차를 한 잔 마시고 가야지. 다음 날, 호기롭게 리셉션 데스크로 가서 “저 차 한잔 주세요!”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 “sorry.” 호텔리어는 메뉴판에 적힌 걸 지적했다. ’ 무료차 제공. 오전 7:00-9:00, 오후 3:00-10:00‘ 내 머릿속 9:00-3:00는 어떻게 된 일일까.



6. 일본 발권기는 아무 티켓이나 주지 않아


아침에 눈을 뜨면서 든 생각, 좋아 이런 멍청한 나지만 내가 아님 누가 나를 사랑하겠어. 어제 고생한 나를 위해 사토브리앙을 먹줘야겠어. 그렇게 두툼한 돈가스집으로 유명한 곳을 좌표 찍고 티켓 발권기에서 금액에 맞는 걸 뽑아 티켓을 개찰구에 밀어 넣었다. 근데 뱉어냄. 역사의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한 층 아래 내려가서 발권하라고 하셨다. “환불 안 돼요?” “안 돼요.” 넵. 멍청한 나는 한 층 내려가서 발권했다.

흰색을 티켓을 사야하는데 노란색 티켓을 샀음. 문열기 전부터 줄서있다.


7. 확 여기서 벗어버릴까 보다


일본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라. 다른 계획은 1도 없이 러닝화와 운동복을 챙겨 왔더랬다. 상의는 입던 티셔츠 입고 뛰고, 러닝화는 신고 가고 바지만 챙겨서 여행하다가 저녁에 러닝할 계획이었다. 내게는 모든 계획이 있었다! 다만 좀 부주의하고, 산만하고, 운이 안 따라주고 뭐 그럴 뿐이다. 아무튼 후글렌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까지도 계획이었고 여기서 나는 러닝 사이트를 고민했다.

후글렌과 로스트 엔 파운드

요요기 공원- 후글렌이 요요기 공원 앞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뛰어도 되긴 하는데, 이때가 오후 2시. 섭씨 35도. 안 돼요, 안 돼. 다메요. 죽어.

신주쿠 교엔 - 러닝 하면서 정원을 보면 얼마나 좋게요. 후글렌이랑 이쪽 편집샵을 구경하다 신주쿠로 넘어가서 해질 때 러닝하면 되겠다.

신주쿠 교엔 당첨. 나는 천재야, 계획 천재. 그런데 민나사마, 여기서 주의할 게 있다. 1. 신주쿠 교엔은 6시 30분까지 운영한다. 그리고 2. 환복을 해야 해. 챗지피티(애칭 똑또기)는 역에 락커가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여기가 유명한 신주쿠의 그 사방팔방 교차로

신주쿠 그 유명한 교차로에서 사람들 횡단보도 건너는 거 구경하고 신주쿠산초메역에 갔는데, 어라 락커가 없는데? 실로 엄청난 크기의 역이었다. 이때가 4시. 휴대폰 시계를 보면서 무인 보관함을 찾아 역 안을 헤맸다. 똑또기가 있댔는데! 그러다 무슨 통로 쪽에서 발견. 무인 보관함 한 칸만 비어 있는 상태. 4시 20분. 좋아 빨리 옷을 갈아입어야 해. 이제 화장실만 찾으면 된다. 여기서 잠깐, 일본은 지하철 역만 가면 대문짝만 하게 보이는 게 화장실 표시판이다. 진짜 일본은 감히 화장실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도쿄의 지하철역 어디를 가든 화장실이 있고, 많고, 개찰구 통과하기 전이든 후든 암튼 많고, 과민성 대장염이 있어도 당신은 구원받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싶었다. 바로 이 순간 전까지 그랬다. 무슨 말이냐면 옷을 갈아입으려 하는 그 순 간, 바로 거기엔 화장실이 없었다. 그렇게 이제는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역 안을 왔다 갔다 몇 번을 하다가 포기하고 역 내에 있는 전자제품 상가로 들어갔다. 표시판 보고 들어갔냐고? 아니 그냥 뭐 있겠지. 없으면? 없으면 모르겠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는데 천장에 아기 햄스터 크기의 표시판이 매달려있었다.

무인 보관함과 신주쿠교엔 입장권. 신주쿠교엔 4시 40분 입장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전자상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무인 보관함으로 갔다. 근데 그 칸, 내가 찜 해놓은 그 칸 7414 누가 차지했다. 하루키상 일본은 제가 러닝하는 갈 허락 해주지 않네요. 그렇게 무인 락커를 두리번거리는데 제일 아랫칸에 하나 비어있었다. 거기에 물건을 넣고 락커를 잠그고 계산을 하려는데 여기는 카드만 되네? 불안한데? 그 불안은 팩트. 그 카드는 신용카드 계산이 되는 게 아니라 교통카드로만 계산이 된다. 허나 나는 교통카드 안 만듦. 왜 그랬냐고 묻지는 말아 줘요.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쭈그리고 앉아서 청바지랑 가방을 빼고 있는데 옆에 있는 무인 보관함에 물건을 꺼내는 사람을 봤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짐을 들고 그 사람이 빼낸 자리에 물건을 넣었다. 다시 계산해보자 하고 계산구를 보는데 럭키! 이 보관함은 현금을 받는다 400엔. 수중엔 딱 천 엔이 있었고, 신주쿠 교엔 입장료 500엔. 살았다. 그렇게 신주쿠 교엔으로 뛰어갔다. 이때가 4시 30분. 잠시 뒤 신주쿠 교엔에 입장하고 안 사실, 공원 내에 짐보관소가 있다.


8. 일본은 라멘이지


라멘 정도는 먹어줘야 일본에 왔다고 하지 않겠어? 러닝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라멘집을 검색해 현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라멘집 발견. 그러나 여기는 현찰만 받고 나는 현금이 없다. 아까 무인 보관함이랑 공원 입장료에 다 써버린 탓에. 나는 구글맵으로 트레블월렛 수수료 안 내는 atm을 검색했고, 한 동안 gps를 못 잡는 탓에 역 안에서 이십 분간 뱅글뱅글 돌았다. 그렇게 도착한 atm은 수수료가 11%였고, 그리고 최소 인출 단 위가 만 엔이었다. 내일 한 시 출국인데. 그렇게 만엔을 손에 쥐고 식당을 찾아 갔는데, 여기는 자판기로 주문을 받는다. 응? 편의점 가서 돈 깨오면 되지 않냐고? 알았으면 진작에 했지. 유튜브 보다가 자판기 앞에서야 알아버렸는 걸?



9. 축하합니다. 또 연착입니다


출국 당일 도쿄 타워가 보이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어제 쓰고 남은 현금으로 계산을 했다. 현금이 좀 남았는데 공항에서 마저 털어야겠군, 아 그나저나 아름다운 일요일 오후였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비행기 터미널을 알아보려고 나리타 공항을 검색했다. (이 항공사는 사전 체크인을 했는데도 모바일 항공권을 전송하지 않았다.) 해당 편명을 검색해 보니 13:10  ->15:55로 표시되어 있었다. T1이라는 터미널 표시와 함께. 응? 잠시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문제의 항공편

실은 이렇다. 시간을 되돌아가 보자. 전날 밤 라멘 먹고 돌아와서 샤워하고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항공사로부터 비행기 연착을 알리는 카톡이 와있었다. 13:10->15:55 나는 그렇군 하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마저 말렸다. 문제는 13:10->15:55 이 시간, 그러니까 13:10-15:50 가 원래 내 비행편의 비행시간이다. 그래서 뭐야 원래 스케줄이잖아?로 생각해 버렸다. 여튼 나는 그 아름다운 일요일 오후 도쿄의 한 지하철 역에서 두 시간 반이 뜨고, 이미 1420엔짜리 기차표를 끊어버렸다.


10. 잠시만요! 아직 멀었잖아요?!


롯본기의 서점. 좌 츠타야 롯본기점 우 분키츠

일찍 나리타공항으로 갈까 하다 롯폰기에 있는 서점으로 갔다.  물론 35도씨의 한낮에 25인치 케리어를 끌고서 말이다. 롯폰기에 서점 두 개를 구경하고 다시 역으로 돌아와 역무원의 도움으로 발권을 했다. 1420엔이고 2번 플랫폼에서 타면 되고 갈아탈 필요 없다. 안녕 잘 가. 아무튼 이렇게 말했다. 안녕 잘 가라는 말은 했던가? 기차에서 아까 서점에서 샀던 책을 보다가 도중에 졸았다. 시원하고 나는 끝까지 바보 같았고 이렇게 살아서 귀국한다니 감사하다는 심정으로 살짝 꿈도 꾸고. 그렇게 자다가 깨서 구글맵을 봤는데, 어? 이 기차 왜 이렇게 가지?


기차엔 다들 케리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고 기차도 나리타 간다는데, 지도는 나를 이름 모를 일본의 시골 어딘가로 안내했다. 황급히 시골의 무슨 역에서 내려서 일본어만 할 수 있는 일본인 역무원에게 정중하게 영어로 물었다. 그리고 대화가 안 됐다. 하는 수 없이 ”나리타! 나리타! “를 외치고서야 아 오케이. 할아버지 역무원은 내가 올라왔던 승강장의 플랫폼을 가리켰다. 뭐야? 잘 가고 있었잖아? 구글맵을 다시 확인해 보니, 가고 있던 원래의 길에 원래의 기차를 안내했다. 이쯤 되면 구글맵이 사용자 커스터마이징화가 잘 돼서 나처럼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다음 급행차는 15분 뒤였고, 나는 기차에 앉아서 보던 책을 마저 보고, 나리타 공항역에 도착해서는 뛰었다. 그렇게 수화물 부치는 곳으로 도착했는데 불운한 징조, 줄이 없다. 항공사 직원 한 분이 의자에서 일어 나려는 걸 다시 앉히고 케리어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렸다.



열 가지밖에 안 되네? 좀 더 될 거 같은데. 아 첫날밤에 창문에 암막 치는 법을 몰라서 새벽 7시에 강제 기상 한 것도 있다. 편의점에서 요플레인줄 알고 샀는데 푸딩이었고, 그리고 원래 러닝 하려고 했던 날, 사토브리앙을 먹은 날 이 날 열사병을 앓았다. 그래서 그럼 망한 여행이었냐고. 아니 이번 여행은 대성공적이었다. 살아서 돌아온 게 어딘가. 이 정신머리로 이집트랑 유럽을 여행했다. 세상은 나 같은 허술한 사람을  포용할 만큼의 아량은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다음 편엔 세상의 친절함과 이번 여행이 왜 성공적이었는지 써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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