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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도니 Aug 19. 2024

우리는 내던져졌다

소설 <구토>를 읽고서 1부 : 피투체


<1부 : 피투체>


여름은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다. 실외는 덥고 지나치게 습하다. 이런 날씨는 땀이나 피부 밖으로 나오기 좋은 날이지, 사람이 밖으로 나오기엔 썩 유쾌하지 않다. 그러니 에어컨을 켜고 봐야 할 책이나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봐야 할 책이라는 게 있다. 헤르만 헤세, 밀란 쿤데라, 사르트르 그리고 니체 등… 우리 세대가 빚지고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어깨에 올라서서 세계를 보고 있다. 구토의 감상문을 총 3편에 나누어 걸쳐서 쓸 예정이다.


세상에 내던져진 자들; 피투체

피투체. 이는 세상에 목적 없이 내던져졌다는 의미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물은 쓰임을 고려하여 제작한다. 인간의 존재는 목적성이 없고, 그런 우리는 자유롭기에 실존적 고민을 한다. 우리는 자유를 선고받았다가 여기에서 나오는 말이다. 다음은 소설 구토의 피투체.



1. 로캉탱


주인공. 소설은 로캉탱이 돌멩이를 집어 들면서 구토를 느끼면서 시작된다. 로캉탱은 물화된 것을 보면 구역감이 치민다. 소설에서 말하는 구토는 역겨움이나 혐오스러움과 같은 통상적 의미보다는 물체와 자신과의 차이를 느끼는데서 오는 충격과 고통 그리고 허무다. 로캉탱은 자신의 실존에서 오는 허무감을 잊고자 롤르봉에 대한 전기를 쓴다. 로캉탱은 롤르봉을 생생하게 게 느끼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낀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인물들은 생각하는 건 재밌는 일이다. 소설 속 인물이든, 연예인이든… 나는 그들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사물화시킨다. 내 머릿속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이미지들일뿐. 그러나 로캉탱은 타자 즉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생각하면 고통스럽다.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인물이 안니이다.



2. 안니


로캉탱의 전연인. 수년만에 로캉탱과 재회를 한 안니는 예전과 달라져서 나타난다. 외모가 변하고 그와 만날 때면 항상 하는 습관도 사라졌다. 그런 안니는 양태만 바뀐 게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그냥 살아가는 것, 쓸데없는 존재 즉 실존적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건 안니는 로캉탱에게 이정표가 되어 달라고 하는 부분. 그를 하나의 척도로서 안니는 스스로를 인식하고 싶다고 말한다. 와닿는 표현이다. 왜 우리는 자신의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그걸 하나의 척도로 외모가 변한 걸 느끼거나 앞선 사진과 비교하지 않던가.



3. 독학자


도서관에서 저자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책을 골라서 읽는 남자다. 왕성한 지식욕 때문이라기 보단 자신의 허무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 밑 빠진 허무의 독을 채우기를 반복하며 만족해한다. 남자의 행동은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도 일과 중엔 바빠서 성찰할 틈이 없다가 새벽이 되면 약간 센치해지고 좀 …. 그렇게 되지 않던가. 남자는 반복적 행위로 실존적 공허가 인식될 틈을 안 준다. 우리의 행위에 목적성과 정의는 자의식을 마비시킨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정의되길 원한다. 전쟁 포로에서 사회주의자와 휴머니스트로, 병에 라벨을 붙여 표식 하듯이. 독학자는 그 집단에서 유대감을 느끼고 안도한다. 유대감이라는 게 좀 그런 게 인류에 유대감을 느끼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함께 눈물을 흘리겠지만 그 이복형제로는 전체주의도 있다. 그리고 유대감이라는 게 쌀쌀맞아서  해당 집단에 유대감을 느끼려면 그 집단이 공유하는 특성을 내가 표방해야 하고, 그 집단이 배척하는 특징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유행에 따라 산 옷들은 트렌디하지만 개성은 없다. 무엇보다 그 유대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재미있는 건 독학자의 수박 겉핥기식 앎인데, 그는 휴머니즘네 경도되었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는 못 한 채로 그 정신에 표류하면서 자신이 그에 속해있는 것에 만족한다. 로캉탱은 그런 독학자에 동정과 동시에 혐오감을 즉, 구토를 느낀다. 서점가의 자기 계발서류를 보면 간혹 철학자들의 저서가 전후의 맥락 없이 몇몇 문구만 인용된 책이 있다. 니체나 사르트르의 글들은 확실히 자기 계발적이긴 한데, 그 뭐냐 서가에 꽂인 베스트셀러칸의 자기 계발서에 꽂히는 건 바라지 않을 거 같다.


소설에 마지막에 그는 어떤 남학생들의 장난에 말려들어 추행한다. 그 자신의 타성이 깨지는 순간이다.  그는 위로하려는 로캉탱을 뒤로한 채 홀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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