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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도니 Oct 17. 2024

아이의 엄마야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듣기는 지루한데 또 그 노래들을 들으며 살아가는 하루는 지난한데 그런 날들이 살뜰히 모였다. 커피를 마시며 프랑스 팝을 듣는데 옆 가게 사장님과 여자의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삶이 그렇다. 하늘은 말갛고 한쪽에서는 싸우고 배경음악으로는 프랑스 음악이 흐르는 것. 배가 조금은 부글거린다. 샐러드가 매웠는데 그것 때문일까. 심심한 하루다. 내 위장만 바쁜 그런 오후. 전에 친구 집들이를 갔을 때 친구에게 태동이 느껴지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그렇다고 음식을 먹은 뒤의 위장이 움직이듯이 그렇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 내 샐러드의 태동을 느끼며 친구가 생각났다. 물론 아직도 내 위장 속 샐러드는 움직인다. 오후의 해가 흰색 전봇대에 새로로 길게 걸려있다. 오늘은 아이들이 안 오네.


퇴근 전의 약국

나는 작은 약국을 경영한다. 반복적인 일과들을 하고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받고 반복적으로 아이들이 약을 처방받아 온다. 그러나 아이들의 론도는 즐겁다. 아이들은 내 가운에 묻은 커피자국을 물어보기도 하고, 크림빵을 주는 아이도 있고 또 목 아프지 말라고 정수기에서 직접 물을 떠주는 아이도 있다. 작은 약국의 좋은 점은 아이들이 몇 명만 있어도 작은 사람들의 활력으로 가득 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미국영화처럼 코에 분이 묻게 일하더라도 재미있다.


싱글로 살며 이래저래 살고 있다. 주위에는 결혼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더니 아이들도 생기고. 교복 입을 때 만났던 친구가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는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멋진 일이다. 특히 그 사람이 친구이고 아이를 곧 낳고 아기방을 꾸미는 걸 보는 건. 그리고 태어날 아이들을 (예를 들면 뜬봉이와 아보) 생각해 본다. 엄마를 닮아서 권투를 좋아한다거나 묵은지참치 김밥을 잘하는 아이들.


디즈니랜드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리 아랫쪽이 걸리는 느낌이 든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김없이 어린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엄마를 생각하는 건 가슴 벅차다. 아이를 낳기로 한 결정한 어머니. 당신의 자녀로서 온전히 그들의 인생을 지켜보기를 결정한 어머니. 나는 내 한 몸 건사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 터프한 세상에서 하나의 인생을 세상에 선물하고 그들과 함께 할 당신을 존중한다. 애석한 게 있다면 다만 그렇게 있다면 세상이 좀 험난하다는 거다. 그래 그럼 나는 어쩌면 좋을까.


곧 태어날 사람을 위한, 앞으로 살아갈 사람을 위해 이미 태어난 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 질문이 오랫동안 마음을 괴롭혔다. 일하고 장보고 책 읽는 삶.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인간이고자 함은 가능할 것도 같다. 어떤 행위로의 직렬성은 떨어지지만 그 또한 내 삶의 은유로 행위로 드러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상냥하고, 인내심 있는 사람 그래서 내 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아이들의 어머니를 존경하는 사람. 그 아이들의 어머니랑 피자를 먹으며 일상 이야기를 즐겁게 듣는 사람. 그런 세상에 큰 보탬은 안 되겠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약을 잘 먹을 수도 있고 그럼 아픈 아이들의 어머니가 스트레스 덜 받는.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는 나랑 즐겁게 웃다가 돌아가고. 그래 이 글은 내가 어떤 인간이고자 함이며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의지이다. 뜬봉이와 아보를 위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날 인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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