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시작된 여행
2025년 1월 1일.
나와 딸은 새로운 해의 시작을 병원에서 맞이했다.
새로운 학교에 발령을 받아서 인계인수와 밀린 업무를 정리하느라 바빴던 탓에,
강원도에 계신 부모님께서 며칠 올라오셔서 아이와 남편의 식사를 챙겨주셨는데.
저녁에 먹은 가리비회가 잘못된 것인지, 갑자기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토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것이 아닌가.
큰 병 한 번 앓은 적 없고, 잔병치레 또한 적었던 아이이기에 금방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얼른 응급실에 데리고 갔다.
연말연시임에도 주취 환자 소동도 없이 조금은 한적한 응급실 한 구석에서,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장염인 것 같습니다. 며칠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죠.”
“네????”
아니 선생님. 저 내일 새 학교 출근하는 첫날인데요.
그리고 오늘은 1월 1일인데요. 새해 첫날부터 입원이라고요?
그래, 에미야. 이제 얼른 가서 짐 챙겨 오렴 ^^
새해 첫날부터 병원에서 잠자는 거 엄청난 이벤트인 거 알지?
입원실로 올라가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 주고, 짐을 챙기러 병원 밖을 나서는 길.
가로등이 나를 보며 비웃는 것 같았다.
그래, 새 학교에서 새 인생 펼치는 건 무슨.
그건 내 헛된 꿈이었지.
제길.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듯 마는 듯 청하고, 출근 시간 맞추어 학교에 갔다.
“실장님, 근무 첫날부터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가 입원을 해서요...
오늘내일 이틀간 가족 돌봄 휴가 좀 써도 될까요?”
맘씨 좋은 실장님과 차석 주사님, 실무사님께서 얼른 가서 아이 간호하라며 내 등을 떠민다.
후.... 근무 첫날부터 1시간 근무하고 조퇴하는 사람 나야 나.
집에 가서 노트북과 학교 업무에 필요한 인증서와 중요한 서류들을 챙기고,
슬기로운 건 개나 줘버려,
하루하루 버티기 급급한 병원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서 아이에게 갔다.
아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휴대폰을 보며 깔깔댄다.
엄마는 속 터져 죽겠는데!!!
다행히 아이는 밥도 잘 먹고, 크게 아프지 않고 4박 5일간의 병원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틈틈이 업무 처리를 하면서,
친한 삼촌이 선물한 오랑우탄 인형을 끌어안고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도 이제 5학년인데, 언제까지 내 곁에 있어줄까?’
‘이번처럼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아니면 내가 아파서 이 아이 곁을 떠나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결심했다.
신설학교 근무하는 3년 동안 하지 못했던,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 거슬러 올라가 바쁜 엄마라는 퍼스널 브랜딩 명목 하에
미루고 미뤘던 아이와의 여행을.
올해는 제대로 해보자고.
남편에게 이런 속내를 얘기했더니,
근무 스케줄 때문에 연달아 며칠씩 휴가를 내는 게 쉽지 않았던 남편도 은근 미안했는지,
내 계획에 동조했다.
그래서 3월 가족이 함께하는 다낭 여행, 8월 여름휴가에는 오사카,
그리고 대망의 황금연휴인 10월 추석 때,
아이와 나 단둘이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