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남는 건 시간이고, 없는 건 돈뿐이니.
직장인들이 마음 잡고 떠나기 딱 좋은 황금연휴인 탓에 외국 어딜 가든 항공권 구하기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처음 생각했던 유럽은 애당초 그른 모양새였다.
2월부터 검색했는데 유럽 이코노미는 이미 전멸.
남아 있는 건 비즈니스석, 그리고 1,500만 원짜리 항공권.
그 순간, 올해 유럽은 과감히 접어야겠다는 결론이 났다.
언제 또 이렇게 긴 연휴가 찾아올지, 그때 나와 아이가 시간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에 대한 미련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지만,
결국 눈물을 머금고 국내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해외가 이러하니 국내라고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
추석 귀경길, 귀성길 차량들과 맞물리고 싶지 않아
국내로 가면 무조건 제주도로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일단 출발과 도착 항공편부터 결제했다.
그리고 숙소는 또다시 무한 검색.
처음엔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찾아봤는데,
아이가 만족할 만한 조건(수영장)을 우선하면 숙박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열흘을 계산하니, 숙박에만 2백 이상이 들어가서, 이것 역시 과감히 포기.
가슴이 턱 막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열흘 동안 어디를 다닐 건지 권역을 나누고,
그에 맞춰 숙소를 알아봤다.
아이나 나나 등산은 죽어도 싫으니까 한라산과 오름 등을 제외하니 선택지가 많이 줄었다.
첫날은 오후에 도착하니까 공항 근처에서 지내고, 제주를 크게 한 바퀴 도는 방향으로 코스를 짰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원격업무지원시스템에 접속해서 급여 작업을 해야 하니까
공항 근처에서 무조건 숙박을 하는 것으로.
이렇게 대략 큰 틀을 갖추고 나니 숙소 찾기가 수월해졌다.
되도록 잠버릇이 험한 아이와 따로 잘 수 있게 트윈 베드룸일 것,
오션뷰는 사치, 중간에 한 번쯤은 수영장이 있는 고급 호텔에서 한 번 묵어주고,
성산일출봉 근처에도 가보고.
그렇게 검색을 하다 보니, 숙소 틀도 갖춰졌다.
항공과 숙소를 알아보는 데만 일주일 가까이 걸렸으니,
예약이 모두 완료된 후 한동안은 제주도는 쳐다보기도 싫어졌다는 사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시간은 흘러 여행 한 달을 앞두고,
남편이 꺼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근데, 자기 렌터카는 예약 안 해? 성수기라 비쌀 텐데”
그렇다. 제주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렌터카.
부랴부랴 남편과 내가 제주도 여행 시 자주 애용하던 업체의 앱에 접속을 해보았다.
아뿔싸....
내가 원하는 차종은 이미 없고, 그나마 남아 있는 차량의 렌트 비용은 열흘에 200만 원이 넘는 것이 아닌가!
이 돈을 주고 갈 순 없다는 생각에 좀 더 작은 차를 알아보니, 경차가 120만 원.
그 순간, 내 눈에서도 경차만 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어쩌지 고민하던 차에 지인이 차량 탁송은 어떻겠냐고 하는 말을 듣고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잠시 반성하며 차량 탁송 서비스를 알아보았다.
역시 때가 때인지라, 차량 탁송도 저렴한 비용은 아니었다.
그러나 집에서 바로 차를 보내고, 공항에서 차를 찾을 수 있고,
내 차로 제주도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장점들이 이미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로 결제.
그리고 다음날, 탁송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고객님, 성수기여서 추가 요금이 있습니다.”
네네, 내 그럴 줄 알았어.
결국 중형차+성수기 추가 요금 6만 원을 더 내고, 카드 결제일 할인을 받아서 71만 원에 차도 해결.
그리고 추석 직전 주말에 시댁에 인사를 다녀왔다.
“이번 추석 때는 아이랑 시간 보내고 올게요. 흔치 않은 기회라서. 죄송합니다~~~”
이젠 정말 짐 싸서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건가...
제주 지도를 다시 펼쳐 보았다.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아이와 단둘이 떠나는 이번 여행은 어떤 의미에선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길 같았다.
익숙한 섬이지만, 나에게는 처음 열리는 길이었고-어쩌면 아이에게도 그랬다.
제주 바람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가보라’고, 조용히 등을 떠밀어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