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우도에서 BTS를 외치다!

by 꿈태공

그동안 아이 취향 맞춤으로 여행을 하며 아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애썼다면,

오늘은 잠시 내 취향으로, 아이와 한 발 떨어진 하루의 시작이다.


아주 오래전, 수학여행 때 가보았던 성산 일출봉을 이번에 꼭 가보리라 마음먹고

근처 호텔을 일찌감치 예약을 해뒀던 터라.

짐을 정리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아이가 혹여라도 깰까 얼른 알람 소리를 껐다.

온 세상이 캄캄하다.

제주에 가기 전 새로 산 운동복을 챙겨 입고, 여행 갈 때 매는 크로스백에 물과 여행용 티슈,

간단한 당보충용 간식을 몇 개 챙기고 호텔을 나섰다.


image.png

“당신의 하루가 별보다 빛나길”이라는 거울에 붙은 문구가 내 하루의 시작을 빛나게 해주는 듯하다.

가로등 불빛만이 반짝이는 길을 지나,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 앞에 다다랐다.

무료 길과 유료 길이 있는데, 혼자서는 처음이기도 하고,

어두우니까 5천 원을 지불하고,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로 밤풍경을 남기며 향했다.

달빛이 비치는 해안가 마을의 소박하고 고즈넉한 풍경이 오롯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성산일출봉 정상에 다다르자 하늘 가득한 먹구름 사이로 태양이 빼꼼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내 얼굴 보여줄까, 말까?’


마치 나와 밀당을 하기라도 하듯, 한참을 먹구름 뒤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일출 예보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 내가 예상한 하늘도, 바다도 아니었다.

하... 이쯤 기다렸으면 그만 보고 내려가야 되나...


“어, 뜬다 뜬다!”


기다림에 지쳐가던 사람들 무리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 멀리에서 붉은 기운을 뿜어내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녀석의 등장이다.

‘매일 뜨는 태양 주제에 되게 비싸게 구시네?’


image.png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여전히 내가 상상하던 일출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슬슬 조바심이 났다.

‘아, 사진 멋지게 찍어서 지인들 보여줘야 되는데, 망한 건가.’


그때 옆에 있던 남자분의 말 한마디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야, 지금 이거 꼭 예수님 성화에 나오는 모양 같지 않냐?”

그 말을 듣고 사진을 다시 보니, 거룩함 그 자체다! 알렐루야~~~


그제야 장관인 일출을 못 봤다는 아쉬움은 뒤로 한 채,

슬금슬금 떠오르는 태양 한 줄기와 맑아지는 하늘,

하늘빛과 하나가 되어 가는 바다,

푸른빛을 머금은 성산 일출봉 분화구를 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image.png

올라갈 때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바닷가 풍경, 눈앞에 펼쳐진 억새밭,

모래 위에 겹겹이 포개지는 파도의 하얀 포말,

예술가의 작품처럼 조각된 듯한 일출봉과 그 위를 비추는 거대한 태양의 조화를 만끽하고,

호텔을 나선 지 3시간 만에 무사 귀환했다.


image.png

“채연아, 엄마 일출 보고 왔어!!”

“와. 대단하다”

침대에 누워 눈만 깜박이며 영혼 없이 대답하는 아이를 깨울 겸, 커튼을 활짝 열었다.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의 모습은 또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채연아, 이제 일어나서 우리 예쁜 바다 보러 가자.”


아이 손을 잡고, 성산포항 종합여객터미널로 향했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우도로 가기 위한 관문.

승선신고서를 두 장 작성하고, 매표소에서 티켓을 결제했다.

키오스크로 대부분의 결제를 하는 요즘이다 보니,

매표창구에서 대면으로 티켓을 결제하는 게 꽤 오랜만의 경험인 것 같았다.


우도로 가는 배 안은 중국인의 말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로 가득했지만,

배가 지나간 자리에 하얀 물살을 일으키며 그 위로 갈매기가 날아가고,

저 멀리 등대가 보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image.png

얼마 가지 않아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우도라고 불리는 섬에 도착했다.

더위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아이가 있으니, 스쿠터나 전기차는 패스.

우리는 우도 한 바퀴를 순환하는 관광지 순환 버스표를 끊고, 몇 군데 포인트만 내려서 관광하기로 했다.


image.png

첫 관광지는 검멀레 해변.

바람이 세차게 부는 데다, 곳곳에 사진 찍는 인파로 붐벼 멋진 풍경 사진 찍기는 애당초 포기.

다음 버스 시간까지 뭘 해야 하나 두리번대는 우리 눈앞에 띈 것은 바로 땅콩아이스크림.

“채연아, 우도에서 제일 유명한 게 바로 땅콩이야”

“엄마, 나 땅콩 아이스크림 먹어 볼래~”


어떤 가게로 들어갈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딱 봐도 사람들로 문전성시인 곳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두 개 주문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아 가게를 둘러봤다.

“와, 채연아 여기 되게 유명한 덴가 봐. 연예인 싸인 엄청 많네?”

“엄마 여기 임영웅도 왔었나 봐. 사장님이 영웅시대신가?”

(영웅시대는 또 어떻게 알아 가지고 ㅎㅎㅎㅎ)


내가 아는 연예인이 누가 왔다 갔나 찬찬히 보던 나는 아이가 말리지 않았으면 냅다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머!!! 채연아. 여기 방탄도 왔었네~~~”

“헐, 대박. 여기 진짜 맛집인가 봐.”

“와~~~ 엄마가 또 이렇게 성지순례를 해 보네?”


image.png

땅콩 토핑이 너무 많아서(많이 줘도 불만) 교정기 사이사이에 계속 끼는 바람에

아이스크림 만족도는 그리 높지 못했지만,

방탄 멤버들이 다녀간 자리를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도 내 입안의 고소함은 이미 세계 최고였다.


그런데, 바다를 보는 아이는 영 그러지 못한 모양이다.

바다에 오면 당연히 발을 담글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선택한 코스도 모두 바닷가였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 엄마가 바닷가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세차게 부는 파도를 보며, 엄마는 포즈 바꾸느라 바쁘고,

아이는 카메라 버튼을 꾹-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연사 모드.)


image.png

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인 하고수동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내심 날씨야 제발 좋아져라~ 기도하는 눈치였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하차하는 순간, 아이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까보다 더 거세진 바람과 파도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아니, 기사님이 분명 여기가 제주도의 하와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하와이야.”


image.png

아이는 우리를 덮칠 듯한 기세로 몰아치는 파도를 보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버스 타고 다음 코스나 가자.”


우리의 마지막 코스는 서빈백사장.

여기에서까지 예쁜 바다를 보지 못하면, 발을 담그지 못하면,

오늘 우도 여행은 실패라는 생각으로,

제발 날씨야 좋아져라, 날씨 요괴 사라져라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버스 차창 밖으로 흰모래사장과 우도에서 처음 만나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졌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는 신발을 벗고 냅다 뛰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해사한 웃음을 한껏 지으며.


image.png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이번엔 선글라스 없인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다.

바람이 불긴 했지만, 곱게 다가오는 파도에 발을 담근 아이는 마냥 신났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나도, 예쁜 풍경에 넋을 잃었다.


돌아가는 배편 시간이 되어,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채연아 오늘 우도 어땠어?”

“바다 너무 예뻤어. 다음에 또 오고 싶어.”

“다음엔 날씨 더 좋으면 좋겠다. 그렇지?”

“응!”


image.png

혹여나 바닷가의 세찬 바람에 감기는 걸리지 않을까, 호텔에서 아이와 휴식 시간을 갖고,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미식가인 아이에게 고등어회와 갈치회를 맛 보여 주고 싶어,

호텔 앞 맛집이라고 소문난 횟집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맛집답게 북적인다.

잠시 기다렸다가 자리를 잡았는데 갈치회가 재료 소진으로 주문 불가란다. ㅠㅠ


image.png


image.png


image.png

다른 회 세트를 주문하고 아이는 매운탕에 라면 사리까지 끓여 호로록 먹방을 즐겨 주신다.

그래, 이 맛에 너 데리고 맛집 다니지.

비록 오늘 우리의 우도는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그래도 각자 좋아하는 것 하나씩은 했으니,

날씨 요괴의 방해를 뚫고 얻어낸 '8할의 성공‘이라고 해볼까?

토요일 연재
이전 09화8화. 제주 오길 정말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