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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Jul 15. 2022

귀신은 있다

한(恨)이 맺힌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은 당연하다.

오랜만에 운동을 한 터라, 가볍게 유산소를 하자고 마음먹고 등을 기댈 수 있는 좌식 사이클에 올랐다. 사이클을 하면서 볼 수 있는 티비는 유선 이어폰을 꽂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모든 말에 자막이 나오는 외국 영화 채널이나, 지적인 주제를 다루는 예능을 찾아본다.


그렇게 오늘 내 유산소 친구로 당첨된 소리 없는 프로그램은 <당신이 혹하는 사이>였다. 내 평소 밥친구는 <알쓸신잡>, <차이나는 클래스>, <알쓸범잡> 등으로 일관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유산소 운동 덕분에 오늘 처음 보게 된 <당신이 혹하는 사이> 역시 내 이목을 끌었다. 이 채널을 틀자마자 대뜸 반듯한 모양새로 쪼개진 두개골이 화면에 등장했다. 프로그램에서는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잘라진 이 두개골의 행방을 쫓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섬뜩한 주제에 오히려 소리가 안 들리는 탓인지 패널들의 표정, 행동이 더 심각해 보여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목을 앞으로 쭉 빼어 잔뜩 몰입했다.


https://youtu.be/Y4dZ6X-1j48



결론적으로, 나는 이 회차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두개골의 행방은 일본에서 발견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은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의 잔해라는 가설이 제기되면서 내 손은 땀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731부대가 자행했던 고문의 기록이 자세히 적혀있는 문서를 읽고, 그 장면을 재연한 영화를 보여주는 순간에 나는 바로 모니터를 껐다.


731부대의 생체실험에서 영하 20도까지 사람의 손을 얼려 내려쳐보고, 더 낮은 온도로 또다시 내려쳐보고 언제 절단되는 지를 실험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재생됐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손바닥이 저릿거려 습관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신경계가 있는 생명체에게 의도적으로 끔찍한 고통을 주는 모든 다큐나 영화, 영상을 마주할 때면 나는 매번 손끝과 손바닥이 저릿거린다. 그 소름 끼치는 감각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세게 쥔다. 이전에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날 것의 상태로, 낱낱이 파헤친 다큐 <도미니언(Dominion)>의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 나는 일시정지를 몇 번이나 누르고, 손바닥이 패이도록 주먹을 쥐었으며, 눈을 질끈 감기를 수십 번, 심할 땐 헛구역질도 했다. 그럼에도 알아야 할 진실이라 여겨 끝까지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오늘은 다소 과한 공감과 감정이입을 몰아내며 진실을 마주할 에너지가 부족했나 보다. 모니터를 단박에 끄며 대뜸 든 생각은 '아, 귀신이 없을 수가 없겠구나.'였다. 이렇게 끔찍하게 죽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미약한 한풀이를 하려 산 사람에게 뒷목부터 빳빳하게 솜털이 곧추서는 소름을 선사하는 것 또한 당연했다. 고통스럽게 육신이 산산조각이 나고서 어찌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향해 갈 수 있겠나. 그렇게 우리 곁을 스치는 서늘한 공기는 얼마나 슬픈 영혼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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