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인머스캣 May 07. 2023

[책과 삶] 긴긴밤





- 나는 문학을 거의 읽지 않았다. 현실과 조금이라도 동떨어졌다고 느끼는 순간 흥미가 식는 실용주의, 현실주의인지라 문학은 장벽이 높았다. 그런 내가 요즘 소설을 자꾸 찾아 읽게 만든 책 <긴긴밤>. 아동 문학상을 수상했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나 어른이들에게도 너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더불어 어린이들도 읽어 봤으면 하는 책이고, 아직 글을 읽지 못한다면 내가 읽어주고 싶기까지 한 책이다. 


- 코끼리 무리에서 자란 코뿔소, 이 코뿔소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미 코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코뿔소에게 가족같은 코끼리 무리는 '너는 이미 코끼리로 살아봤으니 이제는 코뿔소로 살아보라'며 본래의 정체성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말한다. 그렇게 코뿔소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 코뿔소는 사랑, 우정, 가족을 얻고 잃는다. 상실과 분노의 아픔에 잠 못 이루는 '긴긴밤'을 보내며 하루를 살아가는 코뿔소 옆에는 그 긴긴밤을 함께하는 펭귄이 있다. 그들은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각자가 가진 긴긴밤의 아픔과 분노는 잠시 묻어두고 서로를 위해 서로의 바다를 찾아주기 위해 하루를 살아낸다. 


- 나에게도 긴긴밤이 있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나를 잠 못 들게 옭아매는 밤이 날마다 길어져 결국 불면증을 얻었다. 기억은 형태가 없지만 놀랍게도 나는 긴긴밤이 찾아올 때마다 그 기억으로부터 소리를 듣고, 촉감을 느끼고, 식은땀을 흘리고, 두려움을 느끼고, 분노와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발버둥치며 하루를 살아내길 어느덧 햇수로 4년 차가 되었다. 와, 지금 쓰면서도 놀랍다. 4년이나 벌써 지났다니. 이제야 조금 나를 괴롭히던 기억들이 조금은 흐릿해졌는데 4년이란 시간이 즈려 밟아준 것이구나. 누구나 긴긴밤을 겪는다. 그럼에도 매일을 살아내고 어느새 나의 바다에 도착할 수 있던 것은 긴긴밤을 보내는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누군가, 나와 연대하는 누군가가 내 옆에 또는 나도 모르는 새 머물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멸하는 존재들은 서로의 슬픔과 아픔을,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과 삶]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