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를 참 많이도 달아놓은 책이다. 다만 내가 처음 책의 표지를 보고 기대했던 철학적 여정은 아니었다. 작가의 위트와 유머, 삶의 발자취가 다소 진하게 묻어 있는 에세이와 철학 그 사이의 책이다. 이 책을 함께 읽은 이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심하게 나뉘었다. 산만하고 정신없게 철학의 깊이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만 나열한다고 작가를 비판하는가 하면, 그래도 딱딱한 철학책보다는 재미있게 철학을 접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후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 "마르쿠스는 모든 철학이 유약함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는 스토아철학의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지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지혜를 지녔는지도 몰랐다. 소크라테스에게 가장 최악의 무지는 지식의 가면을 쓴 무지였다. 편협하고 수상쩍은 지식보다는 폭넓고 솔직한 무지가 더 나았다."
- "좋은 철학은 느린 철학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스타인은 자신의 일을 "느린 해결책"이라고 칭했으며 모든 철학자는 서로 "느긋해지세요!"라는 말로 인사를 건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게 철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 "한편으로 나는 우리가 속도를 줄이는 데서 오는 인지적 혜택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가 우리를 막고 생각하게 만들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고 말한다. 멈춤은 실수나 결함이 아니다. 멈춤은 말을 더듬는 것도, 말을 가로막는 것도 아니다. 멈춤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된 상황이다. 생각의 씨앗이다. 모든 멈춤은 인식의 가능성, 그리고 궁금해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 "가끔 우리는 의미를 너무 빨리 창출한다. 어쩌면 머그컵처럼 보이는 저 물체는 완전히 다른 것일 수 있다. 물건과 사람을 너무 빨리 정의 내리면 그것의 유일무이함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소로는 그러한 경향을 경계했다. "보편 법칙을 너무 성급하게 끌어내지 말 것." 소로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특수한 사례를 더 명확하게 들여다볼 것." 눈앞에 보이는 것을 바로 규정하지 않고 기다리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 "소로는 말한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피로에 지친 눈으로는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
- "쇼펜하우어는 염세적이었던 첫 번째 철학자도, 마지막 철학자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매우 독보적인 염세주의자였다. 쇼펜하우어의 강점은 우울함이 아니라 우울을 설명하기 위해 쌓아 올린 철학적 체계, 고통의 형이상학이었다. 여태껏 염세적인 철학자는 여럿 있었지만 염세주의를 진정으로 파고든 철학자는 쇼펜하우어 단 한 명뿐이다.
-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규정했다. 우리는 존재의 차원에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긍정 정서의 차원에서 쾌락을 떠올린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주의자'였다."
- "에피쿠로스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쾌락은 더 증가할 수 없으며 그저 다양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새로 산 신발 한 켤레와 스마트워치는 더 많은 쾌락이 아닌 더 다양한 쾌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의 소비문화 전체는 다양한 쾌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의 소비문화 전체는 다양한 쾌락이 곧 더 많은 쾌락을 의미한다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잘못된 동일시가 불필요한 고통을 낳는다.
쾌락의 다양성이 우리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듯이 쾌락의 지속 시간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20분간의 마사지가 10분간의 마사지보다 반드시 두 배 더 즐거운 것은 아니다. 평정심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화로운 상태이거나 평화롭지 못한 상태, 둘 중 하나다."
-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 두 사람 다 위치가 불안정했고, 제자들에게는 존경을, 엘리트들에게는 불신을 받았다. 두 사람 다 추측에 의문을 제기했다. 두 사람 다 지식을 귀하게 여겼고, 무지는 더욱더 귀하게 여겼다. 두 사람 다 형이상학적 사색에는 관심이 없었다. 두 사람 다 단어의 정의를 꼼꼼하게 따졌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말이 바르지 않으면 판단이 분명할 수 없다."
- 멈춰서 니체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니체가 나를 만류한다. "최소한 하루의 3분의 1을 정념과 사람들, 책 없이 보낼 수 없다면 어떻게 사상가가 될 수 있겠는가."
-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 로마의 정치가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에 수없이 시달리지 않은 나무는 땅에 튼튼하게 뿌리박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려야 당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을 덕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다."
- "당신은 지구 위 높은 곳을 맴돌며 당신의 작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별것 아닌 교통체증과 더러운 그릇과 옹졸한 말다툼과 잃어버린 노트들. 전부 무관한 것들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다."
- "이 여행은 나의 '기투(企投)'였다. 기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실존주의 용어다. 기투는 우리가 일상의 환경을 초월하게 해주고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우리의 기투가 영원히 다른 사람의 기투와 부딪칠 거라고 경고했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뒤얽혀 있다. 우리는 타인이 자유로운 만큼만 자유롭다."
- "아흔일곱 살까지 살았던 버트런드 러셀은 관심사의 원을 확장시켜서 "더 넓고 덜 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자아의 벽이 조금씩 약해지도록, 자신의 삶을 점점 더 보편적인 삶에 어우러지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
책의 북마크들을 다시 읽고 타자를 쳐 옮기는 지금 녹턴을 틀어놓고 치니 마치 피아노를 치는 모양새다. 정말 그런 느낌이다. 쇼펜하우어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들으며 슬픔의 아름다움을 느꼈다던데, 이와 조금은 다르지만 나는 녹턴과 철학으로 격정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향상심을 갖고 매 순간 기투하는 삶을 살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