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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Apr 12. 2023

[책과 삶] 자기 앞의 생(生)

역경과 고난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



✔️ 의도치 않게, 아니 사실 고의성이 다분하게 실존주의에 관련된 책을 쓸어 읽고 있는 요즘이다. 철학에 학문적으로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틈틈이 접한 철학 중 나는 실존주의가 실용과 학문을 모두 잡았다고 느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아포리즘을 마주할 때마다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다시금 내 앞에 주어진 생에 대해 끊임없이 반추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읽은 책들이 좋은 연결점들이 되어주고 있다.


✔️ <자기 앞의 생>은 홀로코스트 이후, 프랑스에 오밀조밀 모여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서사를 주인공인 10살 소년(알고 보니 14살이었던)의 시점에서 전달한다. 그를 키우는 유대인 '로자 아줌마'는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자 매춘부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신의 가족이 누군지도 모른 채 매춘부의 아이들을 거두어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로자 아줌마의 손에 자란다. 로자 아줌마와 주인공은 특별한 유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수많은 이웃들, 그들 역시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자신 앞에 던져진 삶을 살아가고, 다른 사람의 삶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짐을 나누어진다.


✔️ 유전적으로 복제한 인간이 아니고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른 개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 또한 동일한 것이 단 한 쌍도 없다. 비교의 늪에서 아래를 끝없이 내려다보며 조소하거나 위를 려다보며 절망하는 것은 평생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살자. 그런 것을 다시 되뇌게 해 준 책이다. 솔직히 말하면 한없이 음울하고 착잡한 <자기 앞의 생>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은근한 위로를 얻었다. 내 삶이 조금 더 낫지 않나, 이 정도로 시궁창이진 않지 않나. 그리고 곧 부끄러워졌다. 상대적인 행복은 허공 위에 짓는 성과 같다.


✔️ 최근에 읽은 실존주의와 관련된 서적에서 '기투'와 '향상심'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언어가 내 안에 자리 잡은 순간 나는 앞으로 '향상심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기투하는 삶'이 무엇인지 볼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그것을 좇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생이 내게 던져진 것인지 내가 생에 던져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는 현재였고, 미래도 곧 현재가 된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현재다. 과거와 미래에 붙잡혀 번민에 사로잡히거나 현재 내 삶에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 불평하느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말은 이렇게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의 후회에 나를 던져두거나, 미래의 불확실함에 부정적 가능성을 던져두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기투하고, 향상심으로 매 순간을 살아내고 사유하지 않으면 실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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