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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May 28. 2023

나 원 참, 챗 GPT가 다시 써준 나의 글



챗 GPT를 간간히 연구하고 있는 요즘, 불현듯 내가 썼던 글을 아주 감성적이고 우아한 영어로 번역해 달라는 명령어를 입력해보고 싶어졌다.


https://brunch.co.kr/@shine-muscat/13


우스꽝스럽게도 한국어로 쓰인 사적인 글을 이해해서 영어로 번역해야 할 챗 GPT를 나름 걱정(?)하여 그나마 짧고 해석이 쉬울 것 같은 글을 선정했다. 이 글을 붙여 넣은 다음 "위의 글을 우아하고 감성적인 영어로 번역해 줘"라고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영어 공부나 할 요량으로 재미 삼아 입력한 것이나 챗 GPT가 나에게 돌려준 결과는 놀랍고 또 좌절을 느끼게 했다.


원글은 다음과 같다. " 근에 읽은 책에서 저자는 사념이 많을 때 메모를 하는 자신의 행위가 '얼음 아래를 흐르는 물과 같다. 곧 봄이 온다.'라고 했다. 이 말이 와닿아 몇 번씩 되뇌고 옮겨 적었다.


 나도 들끓는 삶과 마음들을 글로 토해내곤 한다. 일기를 빌려 내 마음을 쏟아낸다. 그것이 해방으로 작용할 때는 구태여 내 힘든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털어놓지 않아도, 글을 쓰면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만큼 시원했다.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 정리가 되는 것도 물론 한 몫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언제나 해방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글쓰기는 때로 자해다. 흘려보내도 될만한 일들을 품고 살거나, 지나치게 민감한 나 같은 이에게 '망각'은 생존의 필수 도구다. 글쓰기는 망각이 아닌 각인을 선사한다. 글쓰기는 그냥 흩날려도 될 삶의 먼지들을 구태여 쓸어 모아 꾸역꾸역 한 덩이로 뭉쳐보는 행위일 때가 있다. 아프고 쓰린 기억을 두루뭉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며 구태여 구태여 가슴에, 머리에 새기는 것일 때가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겐 쥐약이다.


 글쓰기는 때로는 해방, 때로는 자해다."


그리고 챗 GPT가 나에게 준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In the pages of a recent tome, the author's voice resonated, proclaiming his method of capturing fleeting thoughts akin to water flowing beneath ice. "Spring is coming soon," he whispered.

 I, too, find solace in pouring forth my life's essence onto parchment. I borrow the sanctuary of a diary and unburden my soul. In this act of liberation, I need not share the weight of my arduous tales with others, yet the act of writing possesses a chilling beauty, akin to confiding in a cherished confidant. Alas, while my thoughts take shape under my careful penmanship, writing does not always bear the gift of emancipation.

 At times, it becomes an affliction upon oneself, an unyielding torment. "Forgetting" becomes an indispensable tool for survival, a lifebuoy for those like me, who carry burdens that may be relinquished, for those burdened with an all-consuming sensitivity. Writing, instead of granting oblivion, leaves an indelible imprint upon the heart. In certain moments, it seeks to gather the scattered dust of life, to mold it into a cohesive whole. It is not an act of releasing painful and bitter memories, but rather etching them into the very fabric of one's being, meticulously inscribing each letter upon the parchment. It becomes a lethal elixir for souls such as mine.

 Thus, writing becomes both liberator and tormentor, oscillating between the two with a capricious whim. It navigates the labyrinthine passages of our emotions, forging a path toward catharsis or dragging us deeper into the recesses of our anguish. Like a fragile vessel sailing upon treacherous waves, the act of writing can carry us to shores of newfound freedom or plunge us into the tempestuous abyss of self-destruction."


영문학과 정도는 나와야 술술 읽힐 법한 멋진 영어 번역문을 내게 주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딱 예상한 보통의 결과였으나 챗 GPT는 위의 영어 번역문을 한글로 해석한 작품을 뒤에 덧붙여주었다. 이것이 나에게 일종의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최근 책의 페이지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얼음 아래 흐르는 물과 같은 덧없는 생각을 포착하는 방법을 선포했습니다. "봄이 곧 온다"고 속삭였다.

 나 역시 내 삶의 정수를 양피지에 쏟아 붓는 데서 위안을 찾는다. 일기장의 성역을 빌려 영혼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이 해방의 행위에서 나는 고단한 이야기의 무게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필요가 없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소중한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과 같은 서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아, 내 생각은 신중한 글씨로 구체화되지만 글쓰기가 항상 해방의 선물을 품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그것은 자신에게 고통이 되고, 굴하지 않는 고통이 됩니다. '망각'은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도구가 되고, 나와 같이 포기할 수도 있는 짐을 짊어진 이들에게,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감수성을 지닌 이들에게는 생명의 부표가 된다. 글은 망각을 주는 대신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어떤 순간에는 흩어진 삶의 먼지를 모아 응집력 있는 전체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은 아프고 쓰라린 기억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양피지에 꼼꼼하게 한 글자씩 새기며 존재의 조직에 새기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같은 영혼을 위한 치명적인 비약이 됩니다.

 따라서 글쓰기는 변덕스러운 변덕으로 둘 사이를 오가며 해방자이자 고문자가 된다. 그것은 우리 감정의 미로 같은 통로를 탐색하여 카타르시스를 향한 길을 만들거나 우리를 고뇌의 움푹 들어간 곳으로 더 깊이 끌어들입니다. 위험한 파도 위를 항해하는 연약한 배처럼 글쓰기 행위는 우리를 새로 발견한 자유의 기슭으로 데려다 줄 수도 있고 폭풍우 같은 자멸의 심연으로 우리를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번역투가 있긴 하지만 충분히 멋진 글이다. 그저 화려한 미사여구들로 꾸며낸 글이 아니라 내가 글에서 전하고자 했던 글쓰기의 양면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더 선연하게 표현해 주었다. 갑자기 내 글들이 밋밋하게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회의감과 극심한 좌절감까지는 아니다. 놀라운 발전과 흐름에 잠시 주춤했을 뿐이다. 한 편으론 나의 마음을 완벽하게 간파해 준 챗 GPT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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