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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Oct 18. 2022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와 카카오톡 서비스 중단 속 상념들

상념 그 자체


현시대에 감히 역사적이라 표현할 수 있는 10월 15일 오후 3시경부터 시작된 카카오톡 서비스 중단,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생각이 많은 나는 또 머릿속에 말풍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빅데이터 산업은 현시대를 이끄는 주역임에도 데이터 센터의 발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너무도 많은 자료를 직장에서, 개인 생활에서 디지털 아카이빙 해두는데, 그것이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데이터 이원화를 제대로 안 해놓은 카카오 측의 안이함도 있겠지만, 이런 일은 카카오가 아닌 전 세계 데이터 센터 곳곳에서, 그리고 그 데이터 센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에게서 발생할 수 있다. 사실 프로그래밍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에, 해커들이 마음만 먹으면 굳건히 세계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의 데이터를 볼모로 잡는 사태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상상까지 갔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모임의 한 분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신다. 디지털화하여 보관한다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지 않다고 하시며 볼펜으로 종이에 일기를 매일 쓰신다. 나는 처음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이번 카카오톡 사태를 보니 말이 되는 소리였다. 유튜브의 과학자들도 데이터의 불안정성을 이야기하며 파피루스, 돌에 새기는 기록 방법이 가장 보존 가능성 높다고 비유적으로 말할 정도다. 이번 사태로 나 또한 데이터의 불안정성을 여실히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종이 기록을 할 생각은 없다. 덜렁거리는 성격인 내게 종이는 여전히 물 한 번 쏟으면 눈물도 쏟게 되는 초불안정 데이터 보관 방식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데이터 센터의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센터를 바다에 구축하는 연구까지 진행 중이라던데, 가능하면 속히 기술이 고도화되어 안정 궤도에 올랐으면 한다.



그리고 '카카오톡 공화국'이라고 우스갯소리로만 말하던 것이 현실에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카카오와 관련된 모든, 다음 포털,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미용실, 카카오주차장, 카카오택시 등 방금 나열한 것의 수십배나 많은 서비스들이 이번에 함께 먹통이 됐다. 기업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실제로 이번 사태로 심각한 상황에 놓이거나, 아주 곤혹스러운 사태를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카카오톡이 안되던 꽤나 긴 시간 동안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답답함과 해방감. 처음에 카톡이 되지 않자 나는 답답했고, 초조하기까지 했다. 기본적으로 연락을 해야 할 사람들과 갑자기 문자로 연락을 한다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되지도 않는 카카오톡을 몇 번 씩이나 들어가서 언제 작동하는지를 체크한 행동들을 생각하면, 내가 카카오톡 공화국에 완벽한 피지배자라는 걸 실감한다. 또 카카오톡 중독에 가까운 수준임을 새삼 깨달았다. 


한편, 답답함과 초조함은 카카오톡이 불통이 된 시간이 길어지자 점차 묘연한 해방감으로 변했다. 나만 관계망에서 소외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망에서 튕겨나갔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한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카카오톡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를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방대한 관계망 속에서 한 시도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카카오톡 서비스가 중단되자 내 세상의 많은 사사로운 고민들도 중단됐다. 어떤 형태든 인간관계에는 에너지가 든다. 희노애락이 따르고, 후회가 따르고, 조급함이, 때로는 진부함이 따른다. 이러한 감정을 자주 느끼게 하는 카카오톡이라는 원천이 차단되어 버리니, 디지털 디톡스라는 것을 타의적으로 실천하게 된 것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해방감이 길어지기를 바랐다.


카카오톡이, 메신저가 모두에게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 해방감은 다시 느낄 수 없다. 나 혼자 카카오톡에서 멀어지겠다고 행동해도 다른 모든 이들은 카카오톡이라는 불필요하게 넓고 무의식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소외될까 두려운 모양이다. 이런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들이고 싶지 않지만, 나는 텍스트로 관계의 경중에 상관없이 소통할 수 있는 카카오톡이라는 매체에, 메신저에 많이 매료되어 있는 모양이다. 글로 나누는 대화가 너무너무 좋고, 가벼운 대화도 무거운 대화도 많은 사람들과 카카오톡으로 나누고 싶은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나는 원체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 메신저에 깊이 빠져있다.




아직도 카카오톡의 몇몇 관련 서비스들은 복구 중이다. 아무래도 사람들 간의 대화 기능을 복구하는 것이 시급했던 터라 이미지와 동영상 전송은 안되지만 일단 대화는 가장 먼저 고쳤더라. 카카오톡이 돌아오니 너무도 편하고, 나는 또다시 대면하지 않는 수많은 관계의 존재와 텍스트를 주고받는 것을 즐거워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카카오톡 불통 때 느낀 해방감이 물러가는 것이 끔찍하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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