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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Sep 14. 2022

추억조차 두려움이 될 때

실존은 고통이다



경험이 비교적 좋은 매듭을 지어 남겨졌을 때,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좋은 추억이란 말과 달리 '나쁜 추억'이라는 말은 부자연스럽다. '나쁜 기억'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


추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기에,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갖가지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이 세상, 저 세에 발 담그며 뛰놀았다. 가족, 친구, 연인, 놀랍고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교류했다. 혜안을 기르고, 세상을 품는 그릇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뜨겁고, 다정한 기억들이 남겨진 것도 분명하다.


다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본 그때의 추억은 내가 막을 새 없이 울컥 나를 '덮친다'. 그 당시의 감정보다 회상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훨씬 묵직하다. 나는 그렇다. 기쁨과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면 이상하리만치 다정하고, 따스하면서 생생하고, 날카롭게 머리와 가슴을 파고든다.  


추억을 쌓는 것이 두렵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앞으로 펼쳐질 멋진 경험이, 사람들과의 뜻깊은 교류가 내게 선사할 벅차오름을 너무도 잘 알아서, 두렵다. 과거보다 못난 현재에 대한 비탄이 아니다. 행복과 기쁨, 진실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 없는 사회, 삶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감정과 진실, 경험은 모두 고통이다. 인간은 고통으로 실존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조금 버거워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발 짝 세상에서 아주 잠시 물러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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