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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Aug 25. 2022

'타인의 취향'에 잠식되다.


이전에 썼던 글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2021년 6월 29일 일기를 긁어왔다. 1년 전의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더구나. 지금은 이 때와는 조금 더 달라졌는데.


내 삶에 너무 많은 타인이 들어서 있었다. 지금껏 타인의 평가와 시선을 의식해서 많은 경제적, 정신적 자산을 소비했다. 취향마저 타인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것들이 종종 있다. 가만히 내 삶을 뜯어보면 내 것인 줄 알았는데,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던 것들이 많이 들어차있더라. 조금 모나도, 조금 달라도, 조금 과해도, 조금 얕아도 괜찮은 나의 삶의 조각들인데, 타인의 취향에 지나치게 예민했다.


나는 문학 작품에는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다. 실용 서적을 읽는 것을 훨씬 좋아하고, 가끔씩 메마른 땅에 단비처럼 문학을 곁들인다. 하지만, 책을 좀 읽는 사람이면 고전은 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강박처럼 문학 작품을 읽으려 했었다. 고전의 매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난해하고 어려운 고전을 붙잡고 시간을 보낼 때면, 이 시간이 내 현실에 도움을 주긴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지금의 나는' 현실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용성을 중시한다. 물론 때때로 문학 작품에 감응하기도 하지만 실용서적을 읽고 내 삶의 현실적인 변화를 만드는 데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지금의 나에겐 몽상가적 기질이 없다.


나는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특정한 가수나 노래에 깊이 빠진 적은 없다. 노래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가수 한 명쯤은 추종하다시피 해서 앨범과 노래를 줄줄 외고, 콘서트 티켓팅 정도는 도전해본 열의와 경험이 있다. 난 그런 적은 없다. 두루두루 여러 노래를 경험하고, 이 곡 저 곡에 발 담가보는 것을 즐긴다. 때에 따라 내 마음을 울리는 노래는 매번 다르다. 가사의 의미에 빠져들 때가 있고, 가사보다 멜로디에 빠져들 때도, 내 기분에 따라 적당한 비트의 곡에 끌리기도 한다. 꽂힌 노래는 일주일 동안 하루에 10번씩은 들어줘야 직성이 풀린다. 심하면 일주일 동안 100번이 넘게 같은 노래만 듣기도 한다. 그리곤 질려서 다른 노래를 찾아 떠나길 반복한다.


누구든 인생 영화, 인생 책, 인생 음악 등의 '인생~' 하나쯤은 품고 산다. 이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하나쯤은 말할 수 있어야 깊이 있는 사람, 취향이 확고한 사람, 매력 있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인생 작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생각나는 것이 없다. 내 강한 정체성은 '유동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다르다. 나의 삶은 현시점이 가장 중요하고, 지나치게 유동적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물음의 답도 나는 때에 따라 다르다.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마음에 따라, 나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인생 ~'를 답하기엔 난 너무 어리다. 세상의 티끌만큼도 알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인생 ~'를 답할 수 있을 리가.


위와 같은 통찰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타인의 취향에 나를 몰아넣고 그것을 좇도록 종용하며, 나의 취향은 잠식시켰다. 깊이 없는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게 싫었다. '깊이 없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깊이가 얕다. 지금의 나는 그렇다. 얕게 발 담그며 더 넓은 세상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


여하튼, '요즘의 나는' 이렇다. 가장 광적으로 먹고 있는 음식은 초당옥수수, 수박, 복숭아, 자두이다. 초당옥수수는 소위 말하는 '인생' 초당 옥수수를 찾기 위해 다양한 곳에서 구매해보는 중이다. 어디에서 시켜도 평타는 간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계절인 여름을 나게 해주는 정말 큰 동력이다.


요즘 푹 빠진 음악은 <Falling for u>라는 다소 유치한 가사의 짧은 팝송, 위아더나잇의 <깊은 우리 젊은 날>, 마마무의 신나는 노래들, lofi 음악들이다. Falling for u는 짝사랑에 다룬 노래인데 (다소 유치한) 가사보다 잔잔한 전주와 분위기가 너무 좋다. 위아더나잇의 노래는 가사가 참 좋다. '울지 말아요 그대여 거리는 흔들려도 비틀거리지 마요.'라는 곡 초입의 가사에 푹 빠졌다. 어쩜 저런 표현을 쓰지? 마마무의 노래는 내 출퇴근길의 텐션을 순식간에 끌어올린다. 가수의 콘서트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마마무 콘서트에 가보고 싶어졌다. 너무너무 너무 신날 것 같다. 마마무의 댄스곡들을 들으며 내적 댄스를 추는 게 요즘 낙이다. 춤도 너무 배우고 싶다. 아마도 배우고 나면 어디 내놔도 딱히 부끄럽지 않은 정도는 출 수 있을텐데. lofi 노래는 그 특유의 나른함이 좋아서 집에서 혼자 밤을 지새울 때, 한가한 주말을 보낼 때 함께한다. 딱 트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 하루에 5번씩 되감아 듣는 노래들은 다음과 같다.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김철수 씨 이야기'

우리같은사람들 - '그 많던 글자는 일기가 되고', '영웅은 어쩌다 평범한 인간이 되었나'

스텔라장 - 'reality blue', '우르릉 쾅쾅쾅', '알콜맨', '카페인'

나이트오프 - '잠'

Dasutt - ', (반점)'

모브닝 - '그날의 우리는 오늘과 같을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을 나를 눈물짓게 할 테니까'

버둥 - '이유', '독립'


이 노래들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거의 한 달째 되감아 듣고 있다.


드라마나 예능은 성인이 되고 나서 찾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비현실적인 것에 대해서는 매력을 못 느끼는 편이다. 누군가는 드라마가 현실 고증이라고 하지만, 나는 비현실적이고 어색하다고 느낀다. 예능 같은 경우는 인위적인 요소들이 너무도 신경 쓰이는 탓에 집중하지 못한다. 외국 드라마는 열심히 본다. 일단 이중 자막으로 영화를 보면 언어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음과 리스닝이 많이 좋아졌다. 영어와 스페인어에 꾸준한 관심을 갖게 해주는 동력이다. 덧붙여 외국 드라마에서 다루는 주제는 좀 더 폭넓고, 문화적으로 다양하다. 꽤 멀리간 이야기지만, 사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외국 드라마를 자주 봤다면 지금의 나는 양성애자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의 힘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이고, 우리의 정체성은 철저하게 학습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요즘 영화는 즐겨보지 않는다. 그래도 코로나 이전에는 영화관에서 최신 영화를 종종 보곤 했는데, 영화관에 갈 일이 없다 보니 잘 안 보게 된다. 과거의 명작들을 찾아보는 것도 관심이 크게 없다. 나는 현재와 미래를 쫓기에도 버겁다고 느끼다 보니 과거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고전은 영원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말에 공감할만한 여유가 없다.


대신 최신 외국 드라마나 다큐를 즐겨본다. 최근에는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에서 시작해, <더 게임 체인져스>, <대지에게 입맞춤을>, <씨스피라시>, <카우스피라시>, <도미니언>을 봤다. 아참, 최근에 <소셜 미디어>, <미니멀리즘>이라는 다큐도 봤다. 현실과 사회를 분석하는 다큐에는 관심이 많다.


가만 생각하면 나는 꽤나 감성적인 사람이라 예술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철이 드느라 바뀐 성격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당장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것들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예술 작품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인가 보다. 흠, 분명 성인이 되기 전에,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타인의 취향에서 내 취향에 맞는 조각을 떼어오는 것은 내 삶을 퐁요롭게 하지만, 타인의 취향에 잠식되는 삶은 허망함만 남는다. 많은 현대인들이 자신을 주류 문화에 편입시키려 무의식중에 몰아부치고 있다. 미디어, 매체에서 만들어낸 수요상에 부합하기 위해 수많은 페르소나를 겹겹이 쓴다. 이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너무 두껍게 겹쳐져 엉켜져버린 페르소나를, 꽤 오래 또는 영원히 벗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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