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씨, 저는 직장인이 되고 나서 나에게 주는 선물로 가끔 안마를 받으러 가요. 저렴하게는 5만원짜리 얼굴부터 쇄골까지 해주는 마사지를 받고, 돈을 좀 더 얹어서 10만원짜리 전신 코스를 받기도 해요. 저번에는 큰 마음먹고 2시간 코스의 12만원짜리 전신 마사지를 받고 왔는데,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일단 그곳에서 주는 일회용 속옷이 너무나도 조악한 플라스틱의 소재여서 마사지 받는 중에도, 받은 후에도 일회용 속옷이 닿은 곳이 가려워서 기분이 불쾌했어요. 그리고 두 시간 코스는 마사지사가 간사해질 수밖에 없는지 에너지 분배를 많이 하셔서 강도가 많이 약했습니다.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하는 동작들도 있는 것 같았어요. 한 시간짜리 손님 두 명을 연달아했다면 그렇지 않으셨을텐데, 두 시간 동안 강한 압으로 안마 받길 기대했던 건 제 욕심이었을까요. 여튼, 이렇게 마사지를 여러 군데 받으러 다녔지만 아직 제 마음에 쏙 드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기대를 하며 예약한 마사지샵에 방문했어요. 최근에 신경성 위장병이 도져서 복부팽만과 소화불량이 심한데 그것을 마사지로 풀어준다는 광고를 보고 갔어요. 상업화된 여타 마사지샵과 달리 굉장히 정통적이고 심오함을 내뿜는 분위기에 잔뜩 기대하며 예약을 했었습니다. 한 시간에 8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었어요. 무명씨, 잠실역 4번 출구로 나가보셨나요? 매번 잠실 롯데타워가 있는 번화한 거리만 가던 저는 이날 깜짝 놀랐습니다. 잠실역 4번 출구로 나가면 현대화된 신식 건물을 지나 아주 아주 낡은 건물이 있습니다. 이름에도 '장미'라는 단어가 들어간답니다. 건물은 낮고 겉모습은 홍콩의 벌집같은 건물의 외형과 비슷했고 많이 녹슬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건물 입구도 건물 앞이 아닌 뒷구리 쪽에 붙어있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 2층의 마사지샵을 본 순간 저는 생각보다 사이비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인터넷에 괜찮았던 리뷰들을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문을 여니 아주 좁은 원룸 크기의 공간에 위아래를 검은 옷으로 입은 아저씨가 간이 책상에 앉아있었습니다. 맞은편에는 전자피아노와 악보가 있고 공간 곳곳은 굉장히 사적인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어요. 그 너머에 바닥에 깔린 이불이 보였고 마사지 베드가 있을 것이라 예상한 저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사장님의 안내에 따라 주신 옷으로 환복을 했습니다. 옷은 초등학교 때 집에서 입던 내복같은 길이와 디자인이었어요.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를 달고 누워서 마사지가 시작되길 기다렸습니다. 사장님이 불을 은은하게 끄시고는 처음엔 평범한 마사지로 시작을 하셨어요. 목과 어깨를 시원하게 손으로 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엎드리라고 하셨고 엎드려 앞이 안 보이는 저는 청각에 신경을 자연스레 곤두세웠습니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나는 정체불명의 물체를 옮기는 소리가 났습니다. 엎드린 상태라 그 물체가 무엇인지 볼 수가 없었어요. 곧이어 사장님이 발로 제 등을 한껏 밟기 시작했습니다. 생김새는 잘 모르겠지만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던 그 물체는 사장님이 저를 즈려밟기 위해 필요한 받침대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어요. 한껏 밟히고 나서는 다시 천장을 보고 죽은 개구리 같은 자세로 다리와 팔의 힘을 풀고, 또 밟로 여기저기를 밟혔습니다. 시원하기도 하면서 개구리같은 자세로 계속 밝히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게 느껴졌어요. 그러던 와중 사장님이 틀어놓은 음악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명상 음악인데 잔잔하기보다는 몽환적이라고 할까요. 그런 음악을 틀어두시고 갑자기 제게 이런 요청을 하십니다.
"이 음악의 제목은 우주입니다. 자, 상상을 해보세요. 우리는 지금 지구를 떠나고 있습니다. 내 눈에 멀어지는 지구가 보입니다. 점점 더 작은 점으로 지구가 작아집니다. 몸이 편안해집니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수백 개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마사지는 시원하니까 적당히 무시하며 마사지에 집중했습니다. 이제 그분은 자신의 이력을 말하기 시작하셨어요. 자신이 제일 자신 있는 손님은 시험관 시술을 하고 있는 예비 엄마들이라고 합니다. 자궁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비결이라면서요. 그리고 이전에 방문했던 미용실 사장님이 자신의 마사지를 받고 20kg가 빠졌다며 말씀을 하시며 넌지시 패키지를 권유하십니다. 1회에 8만원인데 10회를 끊으면 회당 7만원이라면서요. 저는 그저 웃어 넘겼습니다.
후반부에 가자 이제는 지구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또 가까워지는 지구를 상상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다 사장님이 머리 쪽으로 자리를 잡으시곤 갑자기 검지손의 지문이 있는 부분을 제 미간에 가만히, 정말 가만히 올려 두셨습니다. 그리곤 뭔가 굉장히 힘든 신음을 토해내십니다. 제게 무슨 기를 전해주시고 있는 걸까요. 압은 전혀 없고 가만히 올려둔 그 손가락에 의구심을 가지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마사지가 끝났다고 합니다. 지금 거울을 한 번 보시라고 원래도 미인인데 지금 더 맑아지셨다고 어서 확인을 해보라 채근을 하십니다. 저는 곧장 거울을 봤는데 별 차이가 없었어요. 옷을 갈아입고 나가서 결제를 하려고 하니 10회권이랑 20회권 중에 어떤 걸로 결제를 해드릴까요라고 대뜸 묻습니다. 저는 패키지를 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1회권만 결제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다시 와서 그곳의 칭찬일색이었던 리뷰를 확인해 보니 같은 아이디 5명이 계속 같은 말투로 리뷰를 쓴 것이었습니다. 포털사이트 상단 노출 광고도 사용했던 곳이더라고요. 그곳에서 받아온 명함도 다시 보니 '기공치료'라는 초자연적인 언어를 쓰고 있었어요. 뭐 마사지는 나쁘지 않았으니 크게 시간과 돈이 아깝진 않습니다. 그냥 이 웃겼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어요. 무명씨 마사지샵을 잘 고르는 팁이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