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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Jul 19. 2022

분급 20000원짜리 특수 알바를 소개합니다.

 특수한 인재들만이 지원 가능한 희소 알바

 


분급으로 5000원에서 20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다. 그것도 즉시 지급. 민첩성과 상황 판단력, 대담함을 갖춘 자들만이 지원할 수 있는 특수 알바다. 아주 노련한 인재의 경우 1분이 아니라 초 단위로 일을 해결하고 건별 수당을 챙긴다. 너도나도 뛰어들 법 하지만 생각보다 경쟁률이 낮은 '바퀴벌레 사냥 아르바이트'를 소개한다.


 당근 마켓이라는 혁신적인 지역 기반 어플 덕분에 사람들은 중고 물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재능도 손쉽게 사고팔 수 있게 되었다. 중개수수료가 없는 데다가, 인근 지역 사람과의 매칭이니 교통비도 시간도 아낄 수 있다. 그래서 등장하기 시작한 구매 상품이 '바퀴벌레 잡아주실 분'이다. 특히나 원룸이 많은 지역에서 바퀴벌레 처리 아르바이트는 수요가 넘친다.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레 지역마다 바퀴벌레 사냥꾼의 인건비는 차이가 있다. 거기에 의뢰인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의뢰인의 공포심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프리미엄이 붙는다.


 가령 신림동 원룸촌에 사는 내 친구는 개미 한 마리만 나타나도 온 몸에 털이란 털은 다 삐쭉 세우고, 고성을 지르며 달아난다. 그 친구에게 바퀴벌레는 미주신경성 실신을 일으킬 정도의 존재다. 그러니 자취방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면 기절직전의 상태로 화장실로 피신해 자신을 가둔 뒤, 다급하게 당근마켓에서 20000원으로 바퀴벌레 사냥꾼을 매수한다. 바퀴벌레를 두려워하지 않는이들에겐 너무도 수완 좋은 소일거리기에 이 사냥꾼들은 당근마켓에 '바퀴벌레' 키워드 알림을 설정해놓고 칼같이 응답하여 동네 마실 겸 출장을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수요가 많다.


 나 역시 벌레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예전보단 관대해져 어깨에 붙은 곤충 정도는 툭 밀어낼 수 있는 경지에 올랐지만, 바퀴벌레는 언제나 예외다. 너무도 명확하게 해충인 바퀴벌레는 온몸의 유전자가 동원되어 본능에서 비롯된 불쾌감과 거부감을 일으킨다. 덕분에 집에서 청결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음식물을 절대 방치하지 않으려 갖은 애를 쓴다. 그런데,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여러 변수들이 있다. 가구에 붙어온 바퀴부터 시작해서 건물의 원자재, 택배 상자출신까지 다양한 바퀴가 딸려온다. 덧붙여, 이웃집의 청결하지 못한 관리로 엄한 우리 집에 바퀴벌레 식구를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그 무엇보다 당혹감을 주는건, 집바퀴보다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는 족히 더 되는 유입 바퀴다.


어느 날, 퇴근 후 주방의 불을 켰을 때 큰 흑갈색콩 하나가 뜬금없이 휴지통 옆에 놓여있었다. 콩밥을 해먹은 적도 없으면서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처음엔 정말로 '콩인가?'라고 혼잣말을 하며 다가갔다. 세 발자국 정도 다가가자마자 나는 뒷걸음질 쳐서 소리를 지르며 다시 현관으로 돌아갔다. 바퀴벌레였다. 집바퀴치고는 확실히 크기가 남달랐다. 다행이 그 분은 내가 틈틈이 살포해놓는 강력 살충제를 즈려밟고, 맛보신 뒤 몸을 뒤집고 영원한 안식에 드신 모양이었다. 나는 급히 박사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위에서 언급한 나의 신림동 친구는 박사 학위를 받아도 될 만큼 바퀴벌레에 대해 박식하다. 그 집바퀴와 유입바퀴를 구분하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종까지도 구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니라, 지피지기지만 백전백패를 거듭해야만 하는 새가슴이란 것이 불쌍한) 그 박사님을 통해 우리집에 대뜸 배를 까뒤집고 죽어 있는 큼지막하고 소름 끼치는 벌레가 집바퀴가 아닌 유입 바퀴라는 걸 알아냈다.


바퀴벌레의 종을 알든말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바퀴벌레 사체를, 그것도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끔찍한 그 생물체를 치울 수 없다. 주변인들은 손에 휴지를 여러 번 감아서 눈 딱 감고 집어 변기에 던져 넣고, 물을 내리면 된다고 쉽게 말을 하지만, 나는 특수  강철 장갑을 낀다 해도 못 잡는다. 심지어 죽어있는 바퀴의 반경 1미터 이내에는 절대 발을 들이지 않았다.  


자취를 하는 내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긴 쉽지 않았다. 근거리에 사는 남동생도 하필 몸이 많이 안 좋을 때였다. 그래서 나도 당근마켓에 <삽니다> 카테고리에 '죽은 바퀴벌레 치워주실 분'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내가 제시한 금액은 5000원. 바퀴벌레가 이미 죽어있다 점에서 10000원보단 5000원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아련한 당근 <삽니다> 게시물에 1분도 안 되어 두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먼저 연락 주신 분과 거래 약속을 했고, 10분 뒤에 우리집에 오셔서 휴지로 바퀴를 집어 으스러지게 쥐고는 홀연히 사라지셨다. 왠지 또 다른 바퀴벌레 대리 사냥 스케쥴이 있어 다소 급박하게 움직이시는 것 같았다. 마도 당근마켓 키워드 알림에 '바퀴벌레'를 설정해두시고, 수완 좋은 출장을 다니시는 모양이다.




 아, 내 자신은 부끄럽고, 바퀴벌레 사냥꾼들은 부럽다. 정말로 괜찮은 소일거리인데, 자격 요건이 아주 까다롭다. 나는 벌레 앞에선 손발가락부터 오므라들고 식은땀 먼저 흘리는 사람이라 격요건 미충족으로 지원조차 불가능하다. 혹여나, 지원요건이 되는 분들은 관심 가져 보시길. 가장 중요한 인재 역량은 '용맹함'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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