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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Oct 21. 2022

대화는 좋아하지만, 사교는 힘들어요

극외향형으로 오해받는 내향형의 이야기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에는 '술 먹으러 갈까?'라는 한 마디로 이루어지는 유희성 시간들을 많이 가졌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2년 정도도 역시 술을 먹고 외향적으로 지낼 줄 알아야 한다는 대세에 편승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돌아보니 나는 주제가 있는 대화를 좋아하지만, 사교는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나는 4인 이상이 있는 자리에 가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나의 만남들은 주로 2인-4인 내의 인원에서 이루어진다. 유일하게 6명이서 함께 살았던 기숙사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4인 이상의 관계망이 없다. 4인 이상이 모이면 대화보다 사교, 유희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한 명씩 토킹 스틱을 들고 말하고, 경청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면 짧은 근황 토크를 곁들인 실없는 말들이 오가기 일쑤다. 물론 이것은 나의 경험에 한정되었지만, 나는 발이 넓기로 유명하고, 많은 곳에서 나를 찾고, 불러주는 이가 많은 만큼 다양한 관계를 충분히 만들어 봤다고 자부한다. 나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신나게 나눈 이들은 내가 내향형에 가까운 사람이고, 사람이 많은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들으면 많이 놀란다. 다수의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혀도 마찬가지의 반응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는 대화를 정말 애정 하는 사람이지만, 사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하신다. 물론, 대화가 선행된 후에 어느 정도 기반이 있는 사람과의 사교, 친목, 활동은 즐거울 때가 많다. 사교를 즐기진 않지만 밟이 넓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나는 인간을 애정하고 타인에게, 타인의 경험과 세상에 관심이 많아서 질문을 폭탄처럼 쏟아내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물살을 여유로이 타듯이 이어간다. 이런 마음가짐이니 웬만한 사람들과는 1분 이상 함께 하는 자리가 생기면 금세 친밀해진다. 대화면 충분하다.


직장에 신입이 들어오고,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면 회식 얘기가 분명 나온다. 이건 직장뿐 아니라 운영하는 독서모임, 내가 속한 많은 집단에서 모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응하지 않는다. 대화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교를 앞세운 술자리는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해야해서 싫다. 이제는 일 년에 술을 2-3번 정도밖에 먹지 않는다. 그 중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한 목적은 0에 수렴, 나의 정말 가까운 사람들과 몸과 마음을 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아주 가끔 곁들이는 게 나머지를 차지한다. 나의 울타리에 남은 사람들이 비슷한 결을 갖고 있어, 굳이 술을 곁들여서 만남을 가지지 않는다. 사뭇 어색한 사이에서 술이 친근함을 쉽게 자아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단기적이다. 도란도란 눈을 맞추면서 나누는 대화 한 시간이 더 의미 있게 남는다. 술에 강한 편도 아니라서 술을 먹으며 나눈 수많은 대화들이 다음날 그저 흐릿하게 남아있는 것이 나는 유쾌하지 않다.


한편으론 이처럼 불편한 자리에는 애초에 가지 않고, 다수로 이루어진 모임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내가 의미 있는 사람들이 부를 땐 열에 한 번 정도는 응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그 자리를 불태우고 온다. 이미 형성된 관계망 속의 사람들과의 그런 시간은 대화가 이미 선행된 사교이기에 때때로 나는 응한다. 다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초면인 사람들을 왕창 모아다가 물꼬를 트기 위한 사교적인 자리는 정말 힘들다. 나는 원체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나와 있으면 그 누구도 정적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 정도로 질문도, 대화의 물꼬 트기도 많이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때와 장소라고 내가 판단하고 편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몰아넣은 자리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오지도 않는 질문들은 던지며 안면이나 트는 그런 시간은 싫다.


순전히 사교적인 목적의 초반 만남 한 번이 그래도 공동체 결속에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굉장히 많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가령, 대학교 신입생 오티는 가지 않아도 인생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직장에서 회식 한 번 빠져도, 내 할 도리를 다하고, 내 능력을 인정받고, 회식 자리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괜찮다. 사실 먼저 다가가 대화할 줄 몰라도 않아도 괜찮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여전히 사회는 외향성을 강조하기에 살포시 넣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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