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에도 생각의 꼬리물기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라 일기를 쓴다. 그런데, 그 일기마저 너무 길어져서 손으로 쓰다가 타자로 치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것마저 A4용지 3-4장은 거뜬히 넘어간다. 그래서 단어 나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날 스치는 상념들을 잡아 가둬서 들여다봐야 할 때, 날아가든 머릿속 어휘들을 낚아챈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며 차례차례 나열한다. 훗 날 다시 읽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들인지 해독하기는 힘들어도, 당시 나를 지배했던 언어들을 알 수 있으리라. 항상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들은 언어와 개념이므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