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아무튼, ~> 시리즈를 인상 깊게 읽고 있다. <아무튼, 채식>, <아무튼, 달리기>, <아무튼, 요가>,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외국어>에 이어 고른 이번 책이 <아무튼, 메모>다. 아무튼 시리즈는 자신의 삶에서 생각만해도 즐거운 일들을 에세이로 펴낸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메모'가 삶의 중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니,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정말 금세 읽었다. 글이 유려하고, 따뜻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자기 전에도 읽다가 잠에 들고, 다음날 출근길에도 손에 쥐고 읽으니 어느새 끝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메모가 남겨주는 내 삶의 단상, 타인의 삶에 대한 시선과 통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메모 자체를 시작해야겠다는 욕구보다는 저자처럼 나와 타인, 사회와 세상을 위해 내가 끊임없이 얻고자 하는 것은, 얻어야 하는 것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내 마음을 울리는 구절들이 많았고, 저자가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어서 기뻤다. 내가 한없이 타인에게 몰두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마음이 몽상가로 치부되고,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에 지쳐있던 찰나, 그런 비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버티기 위해 메모하는 저자의 존재만으로 위로가 됐다. 그리고 그는 채식주의자였다. 이 책에서 채식주의자 선언이 등장할지 꿈에도 몰랐지만, 타인과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루트 중 하나이기에 납득이 쉬웠다. 이 또한 참 기뻤다. 내게 오랜만에 기쁨을 주는 책이었다. 나는 몽상가도 별난 사람도 아니라는 위로를 얻었다.
최근 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를 정주행 한 뒤 한 시간 가량을 오열하고, 서울동물영화제에 참석하여 영장류의 착취당하는 삶을 조명한 [비인간 인격체]를 보고 왈칵 눈물을 흘리고, 오은영 박사의 [금쪽 상담소] 클립을 보며 역시 붉어진 눈시울을 식히기에 급급했다. 그 이유는 음지에 숨어야만 했던 사람과 주제들이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무나도 벅차고 기쁘고, 그들이 삶이 아파서 요즘 매일 운다.
이 책의 저자는 고전 소설의 저자들과 그들의 문구를 자주 인용한다. 우리는 '단어를 읽고, 단어를 살아낸다.'는 구절에 무한한 감동을 받았고, 중간중간 인용된 고전 소설의 문구들은 내 삶의 지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고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른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이고, 현재 첫 장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