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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Dec 25. 2022

우리 가족에게 가장 평범한 날이 오길


[효리네 민박]을 뒤늦게 알게 되어 최근에 보기 시작했다. 내 상황과 마음이 답답하고 여유가 없어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참 힘들었다. 미치도록 부럽고 또 부러워서 보는 내내 울었다. 내가 이효리처럼 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서 울면서 [효리네 민박]을 본다. 우리 부모님도 저렇게 전원주택에 살며 휴식하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전원주택도 아니고 번듯한 집 하나 갖고 원할 때 산책만이라도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삶의 밑바닥에서 아직도 구르고 있는 아빠와 밤낮으로 쪽잠을 자며 일하는 엄마가 남들 사는 만큼만 살다가 갈 수 있을까. 가족들끼리 여행은 가볼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 모두 제주도 한 번 못 가 보셨는데, 호화롭게 모시고 다녀올 시간을 살아생전 가질 수 있을까. 기구한 삶의 연장이라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고생만 한 부모님의 숨을 거둬가진 않을까.


무기력이란 이런 것이겠지. 앞으로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살아갈 의지가 사라지는 것. 나는 무기력하다.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갈 수 있을 때 즈음엔 정신력으로 삶을 연장해서 살고 있는 수준의 부모님의 육신이 긴장을 풀고 떠나갈 것 같다. 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지만 벌이에 한계가 있다. 남동생과 내 삶의 모든 초점은 가족에, 부모님에 있다. 결혼은 생각지도 않는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못 해 드린 것들 다해주고 보내려면 결혼은 사치다. 이 짐을 누군가가 같이 짊어지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매주, 주말 내내 운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면 눈물부터 쏟아져서 전화도 못 건다. 사람도 잘 만나지 못한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가족을 조금이라도 떠올리게 하면 눈물만 나서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이 슬픔과 유약함을 전이시키고 싶지도 않다. 내 현실이 이렇게나 아픈데 타인과 교류하기 위해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힘들다. 또 다른 이들의 가족은 부러울 만큼 평범하고, 부러울 만큼 잘 살아서 우리 가족의 비애를 상기시키게 되는 것이 때론 견딜 수가 없다. 가까운 사람의 축복을 온전히 축복하지 못하는 그릇이 작디작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각자의 상대적인 삶이 있겠지만 내 가족들만큼 버려진 삶도 없다고만 느껴진다. 그걸 애써 부정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 평일에는 티 내지 않고 일을 하지만 주말엔 집에서 하루종일 운다.


차차 정신을 차리고 살 길을 모색하겠지만 지금은 무기력과 슬픔에 압도되어 우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다. 일어나야지. 눈물 그쳐야지. 오늘까지만 울어야지. 고난을 이겨낸 희귀한 성공담들을 억지로 내 안에 밀어 넣으면서 낙관적인 척 살아봐야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부터 멈추어봐야지. 그저 신이 있다면 일확천금은 아니어도 우리 가족이 건강하기만 할 수 있게 돕겠지. 우주의 기와 에너지가 도와주겠지. 우리 가족이 좋은 숙소에서 같이 힘들었던 지난날을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는 제주도 여행까진 갈 수 있게 해 주겠지. 그런 날이 틀림없이 올 거라는 꿈같은 희망을 품고 나는 하루를 살아내겠지. 우리 네 가족은 한 명만 무너져도 모두가 쓰러진 듯 서로를 받치고 있기에, 나 또한 함부로 생을 포기할 수 없겠지. 남은 가족들이 죽음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내야 하니까.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위해 죽지 못하고, 서로를 위해 살아 버텨낸다.


가끔 부분 마비가 오고, 손발 저림이 나타나는 아빠의 당뇨 합병증이 사그라들기를. 하루 3-4시간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엄마의 건강에 문제가 없기를. 남동생이 택배 배송을 하다 꽁꽁 언 길에 넘어져 몸을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기를. 나 또한 짐이 되지 않게 내 몫을 할 수 있기를. 말이 안 되는 것들을 소망하고, 가장 평범한 삶이 우리 가족에게 깃들길.


이 글을 쓰면서도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을 멈추고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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