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도 역시 주말 내내 울었다. 그러다 눈물을 닦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울음을 그치고 미래를 꿈꿀 희망을 얻기 위해서였다. 아빠는 나보다 불안하고 불행하겠지만 그래도 아빠도 잘 살아내려 버티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다행히 아빠도 우리 남매를 보며 하루하루를 의연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발버둥 치고 살아도 우리 가족에게 볕이 드는 날은 너무 아득하다는 무기력을 떨쳐내려 애썼다. 아프지 말아 달라고 아빠에게 걱정과 애원이 뒤섞인 말을 했다. 오늘도 허허허 웃으며 알았다고, 열심히 살아보자고 대답하곤 통화를 마무리하려 하신다. 나역시 아빠와 더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울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어 전화를 끊었다.
뒤이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서남북에 흩어져 눈물겹게 살고 있는 우리 네 식구다. 엄마는 아빠보다 감정적인 사람이라 통화로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그리다 같이 울고 말았다. 그런 날이 오면 참 행복하겠다며 청승맞게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와 나는 연신 코를 훌쩍였다.
엄마에게 아빠의 당뇨합병증 증세를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시고 우리 남매를 통해 이렇게 서로의 소식을 듣는다. 엄마와 아빠는 남이지만 우리 남매로 인해 남 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부모님 모두가 행복해야만 우리 남매 또한 행복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빠의 합병증 이야기를 듣고 담배와 술부터 끊어야지 아직도 못 끊었다며 답답해하신다. 듣다 보니 나도 아차 싶었다. 고된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담배와 반주 말곤 기댈 곳이 없어 잔소리하지 않아왔지만, 생각해보니 이제 아빠가 그 정도는 우리를 위해서라도 해주었으면 했다. 아빠가 금연, 금주만 해도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반토막은 덜어질 것 같았다. 아빠가 내 곁에 더 오래 있는 미래를, 행복한 추억을 만들 미래를 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아빠가 아빠를 챙겨주길 바랐다.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이 마음을 전했다. 아빠도 꽤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아빠에게 너무 당연하게 술담배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지라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었다. 여유가 있던 예전에 아빠는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일주일짜리 금연 캠프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캠프 이후에도 꽤 오래 금연을 유지하는 아빠의 모습에 나는 뛸 듯이 기뻤었다. 하지만 곧이어 내가 심각한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말았다. 상대방이 정신병자에 가까워서 아빠와 나는 해코지당하지 않고 상대를 회유하려 진이 빠지도록 애썼다. 그 트라우마로 나는 극심한 불면증과 불안, 우울을 얻었다. 그 과정을 함께 겪고 다시 담배를 문 아빠를 나는 죄책감을 느끼며 말없이 지나쳐야 했다. 이것을 회복할 새도 없이 아빠는 빚더미에 앉는 인생 최악의 암흑기에 들어섰다. 아빠가 술과 담배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걸 잘 알기에 얘기를 꺼낼 생각조차 안 해봤다.
하지만 이제 슬슬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가 되었다. 고난 뒤에 찾아올 환희를 누리기 위해선 건강해야 하고 살아 있어야 한다. 그 정도는 서로가 서로에게 부탁할 수 있겠지. 아빠가 오늘 저녁부터 반주를 않기로 약속했다. 나도 이제 조금 덜 불안하고, 덜 울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