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말이 트이기 시작하며 아이들과의 소통은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주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아이들의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아침에 눈을 뜨면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노느라 진심인 아이들이다.
조용하면 아이들은 뭔가 사고를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아이가 둘이라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키우면서 참 많이 들었다. 둘이 서로 의지하고 함께 소통하며 노는 시간이 하루 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살 터울 남매는 서로에게 제일 친한 친구가 되고 말벗이 되고 때론 경쟁상대가 되기도 하며 성장의 인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책상에 앉아 그림이라도 그릴라 치면 그 시간은 또 얼마나 진심으로 집중하는지 작은아이는 오빠의 그림을 보며 오빠처럼 안 되는 자신의 그림을 입을 앙당 물고 기를 쓰며 그리려 한다.
육아를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 모를만한 아이들의 감정선이 참으로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날들이다.
어느새 내 이름은 엄마가 되었다.
두 아이가 생기면서 점점 내 이름은 불리지 않게 된 것이다. 친정 가족들도 나를 00 엄마라고 부른다. 아니 남편마저도 어느 순간부터 나를 00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했다. 엄마라고 불리는 것이 그리 좋았나 보다. 언제나 엄마를 입에 달고 있으며 어딜 가나 아이들의 세상은 바로 엄마인 내가 되어가고 있음에 가슴 벅찬 책임감을 느끼며 뭉클했다.
딸아이가 기저귀를 떼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 어느 날이었다. 나는 예의 주시하고 일정 간격 시간을 메모하며 소변볼 타임을 예측해서 소변기를 갖다 대고는 딸램아~ 쉬 할 시간이야 쉬해보자! 하며 소변기를 대고 유도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아니~ 하며 소변기를 밀어낸다.
아직 아닌가 싶어 뒤돌아서면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서 줄줄 쉬를 해 버리는 거다. 때론 이불에, 때론 큰아이가 좋아하는 레고 위에, 때론 가죽 식탁 의자 위에서 쉬를 해 버리는 통에 서서히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꼭 소변 유도를 하면 거부하다가 소변기를 치우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줄줄 소변을 보는 모습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순간 감정이 실린 채로 아이에게 단호한 태도로 훈육을 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싸늘한 훈육에 아이가 놀랐는지 울음이 터졌다. 순간 아차싶었고 당황해하는 나를 지켜보던 큰아이가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다.
엄마! 아직 아기잖아요. 그래서 잘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혼 내면 안되잖아요 하며 동생을 다정하게 안아준다. 괜찮아! 하면서 말이다.
너무 미안하고 아이한테 부끄럽고 뭉클했던 기억이다. 바로 딸아이를 안아주며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래 그럴 수 있는 건데 당연한 건데 엄마가 욕심이 컸나 봐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사과했던 일은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어린아이지만 아이에게서도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딸아이는 아기 때는 까칠했지만 돌이 지나고 말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참으로 순하고 다정한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3살 5살 두 아이는 성품이 착하고 따뜻한 아이들로 예쁘게 성장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로 말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어쩜 아이들이 말을 이렇게 예쁘게 해요? 하며 신기해하곤 한다.
아이들은 커가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더 다양한 체험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으나 남편의 일은 점점 많아져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적인 여력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두 아이를 데리고 안고 걸리며 미술관이나 과학관 도서관 등을 수시로 데리고 다니고 키즈카페나 동네 놀이터에도 날마다 가서 열심히 뛰어놀도록 했다.
호기심이 왕성해지고 뛰어노는 거에 절대로 지치지 않는 아이들의 체력은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힘겨웠으나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 몸 힘든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누르는 하차 벨을 서로 누르겠다고 우기다가 다툼이 되기도 한다. 오빠에게 힘이 밀릴 수밖에 없으니 약이 올라 결국 울음이 터진 동생에게 그래 이젠 네가 눌러봐! 하고 양보하는 모습이 그리 귀엽고 한없이 예쁜 시절이었다.
실컷 뛰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선 깊은 잠이 들어 내릴 때 곤욕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내 삶에 전부인 채로 살아가는 나날이 되었고, 나의 시선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멈춰있었으며 모든 신경이 아이들을 향해 꽂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목욕부터 시키고 저녁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온통 집안 곳곳을 다니며 까르르 거리며 놀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은 남편이 오기 전에 바로바로 치운다. 언제나 집은 정돈이 되어 있어야만 했다.
남편의 바람도 아니다.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뭐 하나 흐트러져 있거나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든 내가 되고 있었다.
아이들이 꺼내보고 아무 데나 놓은 그림책들도 번호까지 정렬하며 다시 책꽂이에 꽃아 정리를 해야만 했고 장난감 하나 굴러다니게 두지를 못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의 깔끔 강박은 자꾸만 더 커져 갔다. 심지어는 설거지를 끝내고 컵이나 그릇들도 순서대로 정돈이 되어야만 마음이 편안했고 반듯하게 정리해야만 하는 일들이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