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의 앞으로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나이 마흔에 뒤늦은 출산으로 늦깎이 육아에 접어든 나를 보며 주변에선 걱정 어린 시선들과 온갖 조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었다.
자신들의 육아경험들을 내세우며 수도 없이 간섭과 참견을 일삼았고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의문이 들고 혼란스러운 경험담에 때론 지치기도 했지만 이미 아이를 키워본 선배맘들의 이야기들을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그로 인해 나는 내 아이들을 대하는 것에 있어 크고 작은 실수들을 경험해야 했더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하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들 만의 육아노하우는 결코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정한다.
다만 아이들 마다 기질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자라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배제하고 무조건 선배맘이라는 이유로 맹신하게 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육아는 종종 숨이 차오르는 듯 버겁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실수투성이었지만 나는 분명 조금씩 깨닫고 느끼며 성장해 왔다.
아이를 위한 것이 어떤 것인지 보다 명확하게 깨달아가기 시작하며 시야도 넓어지고 깊이 사유하는 능력도 생기기 시작한 거다. 그 시간은 분명 버거웠지만 때론 행복함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때론 나의 무지함으로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아이도 나도 아픈 시간도 있었다.
처음에는 서툴렀다. 이렇게 까지? 할 만큼 서툴렀다. 그 서툼속에서 나는 조금씩 다듬어지고 빚어졌던 것이다.
나이 많은 엄마였지만 그 작은 아이가 우는 이유조차 몰랐기에 아이와 함께 울었고 남들처럼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남몰래 탓하며 자책하기도 했더랬다. 때론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괜히 위축되고 작아지는 날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집중했고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실수투성이인 엄마였지만 아이들은 참 잘 자라주었다. 언제나 뭐든 좋다고 말해주는 아이들이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라며 엄지 척해주는 아이들이었고. 엄마특유의 투박하고 서툰 언어에도 언제나 따뜻한 공감을 보여주는 아이들이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엄마와 아이는 그렇게 조금씩 같은 속도로 커온 거다. 아이가 넘어지면 내가 넘어진 듯 아팠고, 아이가 웃으면 나도 함께 웃었다. 육아라는 이름의 긴 여행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줄 알았는데,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이토록 빠르게 아이들이 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언제나 사랑스러운 아이들로 내 품에 쏙 안기는 모습으로 영원할 줄 알았다. 어느 날 문득 나보다 훌쩍 자란 아이들은 어느새 내 어깨를 넘기 시작했다. 변성기가 찾아와 걸걸해진 목소리조차 낯설기 그지없다.
제법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엄마를 격려하고 아껴주기까지 한다. 가끔은 나의 말에 반박을 하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내 품 안의 존재가 아님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각자 자신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한 거다.
어느새 부쩍 자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을 바라본다. 이제는 한 발짝 물러서는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모든 것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매 순간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아도 된다.
아이의 앞에서 이끌기보다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일이 더 많아진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질문하나 가 떠오른다. 이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지?
아이가 자신의 세상으로 걸어 나가듯 나도 이젠 나의 삶을 향해 한걸음 내디뎌야겠다. 접어두고 잊혔던 꿈을 하나하나 꺼내보기 시작한다. 그 한걸음이 여전히 서툴지만 괜찮다. 육아를 통해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서툴러도 계속해보면 된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잊는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분명 나도 함께 자랐다.
이제는 안다. 아이의 손을 놓는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앞으로도 아이도 나도 여전히 실수를 해갈테고 여전히 부족할 것이다. 그래도 안심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타고 넘어온 우리는 이미 함께 많은 계절을 지나왔고 그 시간들이 서로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나는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조용히 다시 나를 시작한다.
엄마로 살았던 시간은 나를 더 깊은 사람으로 키워주었다. 지금도 여전히 아이의 뒤에 서 있는 엄마이지만 동시에 나의 길을 향해 한걸음 내딛을 준비가 되었고 여전히 나는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