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찾은 도서관에서
그간 숨 가쁘게 지나왔다. 늘 분주한 시간들이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청소년이 되었고 자기만의 세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내 하루에도 낯선 여백이 주어진다.
언제나 아침이면 으례히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챙기고 학교 갈 준비를 돕느라 숨 가쁜 시간이 흐르곤 했다.
하루가 끝나면 어느새 밤이다. 그 안에서 나는 잠시 멈출 여유도 없이 또 다음 날을 맞이하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싶다.
아이들 등교준비에서 손을 떼게 되고 사소한 일들은 굳이 내가 챙기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거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어색했다. 뭐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 괜스레 아이들 앞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지역 도서관에 회원가입을 하고 싶다는 거다. 미성년자이니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며 함께 가길 요청했다. 그럴까? 그래 가자! 하며 기분 좋게 도서관을 향했다. 아이들 유아기 때부터 도서관에 자주 가곤 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도서관 가는 걸 싫어해서 자연스레 멀리 했더랬다.
아이와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평일 오후였으나 빈자리 하나 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도서관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책 읽기에 몰입하고 있는 거다. 말소리 하나에도 발자국 소리조차도 그 고요함에 방해가 될까 싶어 조심조심 걸으며 도서관 풍경을 살펴보았다.
그 고요함 속에 빛나는 열정들이 내 가슴속을 파고든다. 그저 매일을 가정 속에서 육아와 가사에 분투하며 지지고 볶고 살았다. 그 삶이 최고인 듯 언제나 나 스스로 잘한다고 우쭐댔는지도 모른다. 그 작은 울타리 안에서 최고인 듯 살아내고 있는 내 삶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낮에 도서관에 자리를 차지하고 열중하는 모습들은 내 심장이 쿵쾅쿵쾅 울리기에 충분했다. 분위기에 이끌려 서가에서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꺼내 펼치니 책장 사이로 종이 냄새가 은은하게 흘렀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조용히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무엇에 홀린 듯 눈에 들어오는 책들을 욕심껏 챙겨 들고 대여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감정들과 스스로를 잊어버린 듯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흘러간다. 다시 나를 찾고 싶다는 가슴 떨리는 마음으로 두근거렸다.
그날을 계기로 도서관은 내 일상의 작은 시작점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책 읽기이지만 신기하게 책이 술술 읽히는 거다. 어떤 날은 미친 듯이 책에 빠져 하루 종일 책 읽기만 하다가 보내는 날도 여러 날이었다.
그렇게 매일 책장을 넘길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생각들이 돌아왔고 멈춰 있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다. 책을 읽는 시간은 이상하게도 나를 더 넓은 곳으로 데려갔다. 그저 책만 읽었을 뿐인데 나는 점점 단단해짐을 느낀다.
한 권의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어졌고 책에서 만난 문장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온다. 예전에는 하루가 아이들의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책 읽기를 시작한 그때부터 나의 시간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찾은 도서관에서 내 삶의 한걸음이 시작된 거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 삶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육아에만 머물러 있던 나의 이야기는 조용한 도서관 한편에서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