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눈이래요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간다. 언제나 잘하고 있다고, 나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라고 자신만만했던 생각과 행동들이 옳지 않았다는 것들을 아이들을 보며 깨닫고 새롭게 배워가는 나날이다.
좀 더 멀리 보려 애썼고 깊이 보려 단련해 가는 시간 속에 스스로가 더 단단해지고 비로소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게 되고 눈높이를 맞춰가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니 삶이 달라져감을 느낀다.
그동안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잘하려고 애쓰지 않았고 내 생각이나 주장대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일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나 자신에게 예의주시하는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
나의 시선이 아이를 향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초첨을 맞추고 나를 들여다보니 점점 내려놓아지고 유연함이 길러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내 주장이 아닌 아이의 의견을 들으려 애썼고 한 발짝 떨어져 보게 되니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는 거다. 아이를 키우며 더 큰 세상을 품에 안을 줄 알게 되었다.
아이를 이해하니 모든 삶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따뜻한 정서적 교류가 이어지고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뭐든 자신의 생각을 툭 터놓고 대화해 가니 더없이 좋은 관계들이 형성되어 갔다.
내가 바뀌니 가정이 바뀌는 귀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모든 촉각이 아이들을 향해있던 삶에서 조금씩 나를 향하는 삶으로 바뀌어가고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니 오히려 아이들은 더 잘하고 더 바르게 성장해 감을 느낀다.
늘 아이들만 보고 그 세상이 전부인 것 같았던 삶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한걸음 물러서서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지고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바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집안일하느라 바쁜 틈에 아이들은 내 옷자락을 잡고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늘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엄마였는데 언제부터인지 엄마는 바빴고 이야기는 듣지만 일손을 멈추지 않은 상태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었나 보다.
한 번은 아이가 나를 불러 세우곤 묻는다.
엄마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있데요. 뭔지 알아요? 하고 묻는 거다. 글쎄? 뭐지? 마음!
아니요. 자신의 눈이래요. 상대방 하고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은 내 눈을 그대로 보고 있지만 자신은 자기의 눈이 어떤지를 전혀 모른다고 해요. 하는 거다.
아! 그러네 하며 아이를 보니 아이가 한마디 더 한다. 요즘 엄마는 우리 눈을 보지 않는 거 알아요? 한다.
비언어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말은 소리로 전하는 것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표정, 눈빛, 억양 등으로 전해지는 느낌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고 바쁘다는 이유로 잠시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늘 알게도 모르게도 깨닫고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단지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한 어른으로 더 좋은 사람으로 발전하고 함께 커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 후론 아무리 바쁘더라도 양보다 질을 선택하고 짧은 시간이라도 오롯이 눈을 마주 보며 대화하는 습관이 들여졌다.
그러한 노력과 정성들은 더욱 돈독하고 유연한 관계들을 유지해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