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맞아 할머니를 뵈러 어렸을 때 살던 동네를 다녀왔다.
다섯 살 때부터 고등학교 일 학년 때까지 살았으니 장장 12년을 살던 곳이었다.
가파른 오르막에 다가구 주택이 가득하던 그곳은 잘 정비된 평지에 새 아파트들이 장대하게 위엄을 뽐내고 있었고, 예전에 다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제외하고 기억 속의 그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교과서가 한가득 들어있는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색종이와 밭두렁을 사던 그 문방구도, 플라스틱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나무젓가락을 휘휘 저어서 만들던 그 뽑기(달고나)도, 하굣길에 방앗간처럼 들러 컵 떡볶이를 사 먹던 친구네 집 분식집도 지금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듯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처럼 괜스레 쓸쓸해지면서 나이가 들어간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늙어가는 모습을 볼 때 라던지, 자고 일어난 내 얼굴에 새겨진 이불 자국이 예전처럼 빨리 지워지지 않을 때, 그리고 특히 자꾸만 예전 사진들을 뒤적거리거나 추억의 장소를 가서 추억팔이에 빠지는 지금 이런 내 모습을 볼 때가 그렇다.
(자꾸만 라떼를 외치는 그 마음들이 이런 감정이려나 싶다.)
세상은 지금 이 순간도 쉴 틈 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어제의 것을 구식으로 만든다. 패션 브랜드는 매년 오지도 않은 내년의 유행을 쏟아내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마케팅은 온갖 신조어와 유행을 만들어내며 뒤쳐지는 우리를 보고 친히 "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명칭까지 부여해줬다.
오늘도 누군가는 새로 나온 아이폰 13으로 틱톡과 youtube에 짧은 클립을 올리지만 나는 브런치에 구구절절 글을 쓰며 구형 아이폰처럼 힙하지 않은 옛날 사람이 되고 있다.
MP3에 새로운 노래를 넣기 위해 어떤 노래를 지울까 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그 순간들은 스트리밍이 나오면서 사라졌고, 40자 남짓 꾹꾹 눌러쓰던 문자보관함 속 그 문자메시지는 카카오톡에 잊혀져 오래된 서랍 속 롤리팝에 잠들어있고, 앞으로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퇴근 후 집에 가면서 컵떡볶이가 먹고 싶고, 존재하지 않는 집 앞 슈퍼 앞에 쭈그려 앉아서 소다를 콕 찍어 넣은 달고나를 만들고 싶다. 부족해서 더 소중했었던 그것들은 힙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간절했고, 더 애틋했다.
몇 년 후의 나는 마치 지금의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겠지만 컵떡볶이와 달고나를 그리워하던 이 모습이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돌아올 수 있을까.
리쌍 - 변해가네(feat. 정인)
https://youtu.be/vhyhXZgvOR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