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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이유 Oct 29. 2022

그냥 위로가 필요한 밤



​모든 것이 그렇듯 육아도 안 되는 날이 있다.


아이는 평소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꽁꽁 얼어 잘 풀리지 않는 그런 날.

아이를 낳고 몇 번의 그런 날을 맞이하곤 한다.


마음을 쓰다듬어 볼 시간은 오직 새벽.


육아로 지친 몸을 돌보려면 새벽은 누구보다 곤히 잠들어야 할 시간. 하지만 아이가 잠든 이 시간만이 무엇이라도 끄적이며 마음을 덜어낼 수 있다. 엄마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새벽, 새벽뿐.


아이의 어린이집에 다녀왔다.

문 앞에 내어놓은 작은 게시판에

익숙한 아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1년간 대기한 국공립 어린이집이고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너무 차도에 있는 것 같고 시설도 조금 오래되어 보이고 규모도 생각보다 작고 반에 아이들도 생각보다 많고 걱정거리만 줄줄 매달아 집에 돌아오는 길.


불평 거리를 늘어놓으러 간 사람처럼 나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서류를 받아 들고 돌아와 한숨부터 쉰다.


곧 다가올 어린이집 오티를 대비해 자가진단키트도 어렵게 구매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육아에 모든 것이 처음인 일상이 더해진다.


나는 요즘 묘하게 화가 나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음 안쪽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이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괜찮아질 만하면 작은 바람에도 박차고 일어나 불씨가 번져나간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조용히 앉아 그 마음의 뿌리를 짚어나간다.


어떤 이들은 아이를 보면서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데 아이는 결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아이와 놀아준다는 쉬운 말도 때로는 노동이 된다. 심지어 그 노동의 강도도 늘 예측이 불가능하다. 육아를 하찮게 여기는 이들은 대체로 진짜 육아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육아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하는 것.


해가지고 아이가 잠들고 나면 나도 지쳐 잠들기가 부지기수라 바로 옆 침대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아이의 작은 침대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아이를 재우다 잠이 든다. 중간중간 깨어나 곤히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불편함에 몸을 뒤척여보지만 일어날 기운은 없다.


그렇게 찾아오는 개운하지 않은 아침.

정확한 아이의 기상시간.


나는 내 마음을 미처 돌보지 못한 채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육아를 해보니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시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눈에 보이고 아이는 그 시간 속에 뛰는 듯 자라나는데 나는 여전히 밥 한번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고 책 한 권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아이의 공간과 아이의 물건은 늘어만 가는데 나의 공간과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진다.


나는 적어도 내가 만든 세계의 주인공이었는데 이제는 누구도 돌아봐주지 않는 느낌. 분명히 함께 있는데 외로운 이 마음은 어디서부터 달래야 하는지. 군중 속의 고독이 진짜 고독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밤.


이런저런 훈수는 필요 없고

그냥 위로가 필요한 그런 밤.


새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마음을 쓴다.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을 이 마음을 적는다.


잠들지 않고 어렵게 찾아온 오롯한 내 시간.

새벽이 째깍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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