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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이유 Oct 29. 2022

복직을 미뤘다.




아이를 낳기 전 나의 일상은 대부분 일로 채워졌다. 뭐든지 적당히가 안 되는 성격은 업무에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회사에서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그냥 내가 하고 말지." 병을 육아휴직 하루 전까지도 고치지 못했다.

일은 일을 부르고 해치우면 또다시 일거리가 쏟아졌다. 어찌 생각하면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내 앞으로 할당된 업무량은 곧 내 업무능력의 증명이기도 했다. 나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V표를 그려가며 일에 매달렸고 성취는 업무평가로 연봉으로 그리고 승진으로 이어졌다.

그런 내가, 3월로 예정되어 있던 복직을 미뤘다.

누구보다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며 육아휴직 기간 내내 노래를 불렀던 나였는데 돌아갈 수 없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놓친 기회들이 아까워 애타는 마음을 속으로 삼키던 나였는데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1년간의 대기 끝에 붙은 어린이집에서는 아기 월령이 아직 어려 종일 보육보다는 2-3시간쯤 키즈카페처럼 놀다 가는 편이 아이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했고, 친구들도 입을 모아 갓 돌을 지난 시기는 어린이집 보내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며 안타까워했다.

타인의 혹은 지인의 조언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참고할만한 경험이고 의견이었으나 육아휴직이 끝나면 바로 회사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던 나조차 막상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수십 가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잘 지낼지, 밥은 잘 먹을 수 있을지, 잠이 올 무렵에는 엄마가 옆에 있어야 마음 편하게 잠드는 녀석인데 잠은 제대로 잘런지, 코로나도 감기도 유행인데 감기 한번 걸린 적 없는 건강한 내 아이가 나로 인해 괜히 아픈 건 아닌지. ​생각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점점 몸집을 불려 갔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손가락도 발가락도 이렇게 작은데, 작은 몸에서 뱉어지는 숨소리를 들으며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아직 이 아이의 곁을 비울 준비가 안됐구나.

엄마와 떨어져 본 적 없는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준비가 됐는지, 가서 적응은 잘할지 아이의 입장을 먼저 걱정했는데 정작 엄마인 내가 아이와 떨어질 준비가 안됐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 나만 바라보는 아이가 걱정이었는데 아이뿐만 아니라 나 역시, 아이에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

주어진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은 늘 그렇듯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언제까지고 내 품에 둘 수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사표현은 할 수 있을 때, 적어도 혼자서 밥은 먹을 수 있을 때 보내고 싶은 엄마의 마음.

당분간은 수많은 '적어도'를 만들어낼 것이고 그것들을 이겨내지 못하겠지만 나에게는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 ​내 곁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조금씩 마음을 단련해본다.

괜찮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건네본다.

​​​그리고, 그날 밤.

조용히 고개를 드는 또 다른 나.

엄마이기 이전부터 알던 익숙한 얼굴의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회사에 메일을 보내고 첨부된 서류를 작성해 회신한 뒤 우두커니 서 있다.


​뒷모습에 기다란 그림자가 매달려

소리 없이 흔들린다.

소리 없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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