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마음이 흩어진다. 흩어진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문득문득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상태에 놓일 때가 있다.
그게 어제가 될지, 오늘이 될지 모른 채 있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그런 날.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한숨이 새어 나오고
몸을 일으키기도 귀찮은 날.
늘 반복되는 일상이 얄미운 그런 날이었다.
나는 사실 세상 순한 아기를 키우고 있다. 이앓이? 이유식 거부? 잠 퇴행? 그게 뭐예요 할 정도로 정말 순둥이인 내 아이. 밥은 주는 대로 먹고 낮잠도 규칙적으로 자고 일과 시간에도 책만 읽어주고, 함께 놀아주면 늘 기분 좋은 그런 아이다.
그래서 더욱 말을 못 했다.
나도 힘들다고.
그런데 순한 아이라고 해서 품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먹어보지 못한 각종 재료로 이유식 삼시 세 끼를 열심히 만들고, 먹이면서 물 챙기고, 먹인 뒤에 입 닦아주고, 기저귀도 틈틈이 갈고, 간식도 주고, 놀아주고, 재워주고, 달래주고, 밀려 나온 설거지를 해가며 늘 반복되는 이 생활을 한지 벌써 9개월.
육아휴직을 하기 전,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 긴장도 풀리고 피곤해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는데, 육아는 어쩌면 그 이상. 늘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업무는 꽤나 야무지게 내 마음대로 해냈었는데 육아는 그게 안된다.
아이는 점점 커가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기 위해 아이를 뒤집고, 현관문이나 베란다로 나서려는 녀석과 씨름을 한다.
평소 같으면 오늘 같은 날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모든 걸 내려놨겠지만, 아이가 있는 엄마인지라 다시 기운을 짜낸다. 그냥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를 유모차에 눕혀 세수도 안 하고 나서는 산책길.
햇빛이 쏟아지고 가을바람도 제법 분다. 걸음을 떼면 뗄수록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는 산책의 신비. 아이도 두리번두리번 유모차에 눕지도 않고 앉아 세상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너에게 내 묵힌 감정을 보이기 싫어."
"아니지, 엄마도 사람이야 우울해."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마음들이 나와 눈 마주치면 씩 웃는 아이 웃음에 날아가버린다.
나는, 또 방바닥에 주저앉아 육아가 너무 힘들다, 반복되는 생활이 답답하다. 내 존재감이 너무 희미하다며 푸념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것을 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용감하게 몸을 일으켜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육아는 빨리 뛴다고 이기는 100m 달리기가 아니지 않은가. 여름에는 그늘진 길로 겨울에는 미끄럽지 않은 길로 아주 천천히 산책을 하겠다.
마음이 건강한 육아를 하고 싶다.
건강하지 않은 마음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와 내 아이의 마음 건강을 위해 걷는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지금, 산책이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