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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이유 Oct 29. 2022

공동육아 독박 육아 사이, 찾아오는 육아 우울증

엄마는 왜 죄책감을 느끼는가



아이가 소파로 휙 올라가더니 선반을 뒤적인다. 바로 따라가서 아이를 안으려던 찰나 집에 있는지도 몰랐던 이쑤시개 500개가 순식간에 바닥을 뒹굴었다. 인간 홍삼 아기를 키우다 보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같은 일에 화가 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도 한다. 그건 내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는데 그 기준을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이런 감정 기복에 시달리는 사이 계절은 지나고 또다시 나만 빼고 여름이 왔다. 두 번째 여름이 찾아왔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는 언제든 화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자주 화가 났다. 별것 아닌 일에 감정이 폭발하고 별것 아닌 일에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했다. 사랑하는 내 아이와 함께하는 육아시간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선물했으나, 발바닥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육아 우울은 때때로 내 발목을 집어삼켰다.


독박 육아란 말 그대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아기를 양육하는 육아환경을 말한다. 어느 날 친구와 모처럼 전화통화를 하는데 안부를 묻는 내 질문에 “나 독박이잖아, 말 다했지.” 라며 씁쓸해했다. 핸드폰 너머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직접 보지 않아도 그려지는 풍경, 나도 겪고 있기에 모른 척할 수 없는 상황, 그래 나 역시 독박 육아 중이다.


​공동육아라는 말은 육아를 하는 이에게 굉장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단어지만 동시에 굉장한 실망감을 안겨주는 단어기도 하다. 내가 육아를 하며 기다리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엄마와 주말 그리고 남편. 그건 잠시도 짬을 내기 어려운 독박 육아로부터 단 몇 시간이라도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출장 가족행사 등으로 인한 남편의 부재를 경험할 경우, 오늘따라 안 풀리는 육아로 마음이 힘겨울 때,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공동육아 희망고문은 나를 더 가라앉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공동육아라는 이름의 늪.


​나는 독박 육아를 하며 늘 공동육아를 꿈꾸는 독박 육아 공동육아 사이 어디쯤 있다.


​​​​18개월 내내 육아를 해오면서 육아는 분명 즐거운 날이 많다. 어떤 날은 아기의 살내음만 들이마셔도 웃음이 나오기도 하니, 육아 스트레스라는 말이 미안할 정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내가 놓인 환경이 육아 환경이기 때문에 굳이 말하자면 그걸 육아 스트레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없듯이 육아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는 말이다. 당연히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직장에서 일이 잘되고 안 되는 날이 있듯이 육아도 똑같다. 오늘따라 육아의 매듭이 단단히 꼬여 손톱이 아플 때까지 잡아당겨보아도 그 매듭이 풀리지 않는 날이 있는 것이다.


​내 경우 소리에 민감한 편이라 아기가 짜증을 내어 나를 부르면 그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아기도 감정이 있는데 엄마는 오죽할까 더구나 내 감정은 지독하리만큼 세분화되어 있고 연한 회색부터 짙은 어둠 같은 검정까지 그 색채가 어둡고 다양함은 말할 것도 없다.


​육아 우울증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기가 이유식을 먹다가 집어던져 바닥이 온통 이유식 파티가 되거나, 아기가 까치발로 식탁에 있는 반찬통을 쏟아 방금 만든 식사가 쓰레기가 되었을 때, 몸이 너무 힘든데 낮잠을 은근슬쩍 지나갈 때 아기에게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무언가 뜨끈하게 끓어오른다면, 창밖을 바라보며 이유 없이 멍해진다면, 너무나 예쁜 내 아이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육아 우울증이다.


​우울증에도 다양한 양상이 있지만 육아 우울증이 특히 어려운 것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무려 열 달을 품었고 내 배 아파 낳은 소중한 아기를 키우며 감히 우울이라는 감정을 느끼다니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하루에도 몇 번씩 답답해지는 가슴을 애써 누르고 다들 그렇게 육아한다더라, 그래도 우린 엄마니까 하며 마음속 검은 상자를 모성애로 급하게 포장한다. 우울증은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육아는 눈을 뜨는 동시에 시작되어 멈춤이 없고 특히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는 독박 육아의 경우 내가 아기를 키우며 우울하다고 누구에게 당당히 표현할 수도 없는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다.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유행이다. 소위 하얗게 태워버렸다는 이 말은, 특정한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그 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무기력감 피로 우울감 등을 느끼고 나아가 회의감까지 느끼게 하는 것. 스트레스, 만성피로, 우울감, 무기력증, 의욕상실, 극심한 피로, 두통 등이 그 증상에 해당되는데 이 증상들은 육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실제로 수많은 엄마들이 육아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당연하게도 사람의 체력은 정해져 있다. 몰입해서 일을 했다면 어느 정도의 휴식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육아는 그게 없다. 특히 신생아 때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하며 밤에 잠을 못 자는 건 당연지사. 게다가 아기가 크면 이유식, 유아식 준비 먹고 치우고 씻기도 옷 갈아입히기, 아주 일상적인 기저귀 갈기, 책 읽어주기, 놀아주기 등을 하다 보면 정작 나는 아기를 한 발에 매달고 맨밥에 김을 싸 먹고 있다.


​​​​​​그런 식사가 반복되다 보면 뭔가 먹어야겠다는 의욕이 상실되고 그렇게 식사를 거르다 보면 안 그래도 부족한 체력은 더욱 부족해진다. 때문에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극심한 피로, 육아 우울감, 의욕상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육아 번아웃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전문가들은 운동을 추천하는데, 아기와 유모차를 타고 나가 무슨 운동이 되겠는가. 애초에 독박 육아 상황에서 운동은 절대 극복 방법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결국 내 마음과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육아를 하다 보면 그 대화를 할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한 명은 육아하다 지쳐 잠들고 한 명은 일하 다 와서 지쳐 잠들고, 겨우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저녁시간인데 아기는 그 시간에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늘 한 두 달치가 밀리고 밀려 막상 대화를 하려고 하면 준비된 이야기가 아닌 감정만을 쏟아내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육아도 내 마음도 모두 어려운 날이었다. 마냥 엄마가 좋은 18개월 아기는 엄마 껌딱지가 되어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넘치는 에너지로 자꾸 모험을 즐기는 통에 엄마 마음을 몇 번이고 쫄깃하게 만들었다.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소아과에 달려가고, 그리고 돌아와 바로 소파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이제 내 책장의 좁은 칸도 밟고 오르는 녀석.


그 녀석을 따라가기에 내 체력은 한없이 초라하고, 주워 담아야 하는 이쑤시개는 너무 많았으며, 주워 담는 와중에 다가온 점심 식사 시간 덕분에 아기는 배가 고파 맘마! 를 외쳤다. 서둘러 만든 계란찜은 아기가 전자레인지를 약으로 돌려 둔 탓에 하나도 익지 않았으며 서둘러 만든 식사를 올려둔 상이 넘어져 …(여기까지만 하겠다) 뭐 하나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그런 하루.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는 그것을 안다. 아기는 그저 성장 과정 속에서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어 할 뿐 그 어떤 의도가 없으며, 나 역시 툴툴거리며 쥐어짜도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체력을 원망할 뿐 아기를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은커녕 그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다. 다만 가끔씩 올라오는 이 육아 우울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는지,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뿐이라 이렇게 툭 풀어놓는다.


​아기의 감정만큼이나 엄마의 감정도 소중하다. 힘들었겠다, 수고했네, 고마워 같은 뻔한 말이라도 붙잡고 싶어지는 오늘. 그 말들을 붙잡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새까만 감정들을 잊어야 하는 오늘.

​내일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하는 내 아이를 품에 안겠지만, 사실은 엄마도 그 작은 품에 안기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니 언젠가 네가 이 글을 본다면 모른 척 엄마 한번 꼭 안아달라고... 그렇게 남겨보는 글이다.


​나는 오늘도, 육아를 하고 있다.

부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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