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국면으로 마치 플립북에서 갑자기 다른 챕터로 넘어간듯이 그렇게 여름도 더위도 한마디 인사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불과 일주일 10일전만해도 더위에 헥헥대던 우리들은 이제 긴팔과 긴옷을 입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흐름에 조금더 먼저 편승한 옆자리 여자사람은 벌써부터 몸살감기를 앓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 스테이지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겪곤 합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상황도, 사람도, 괴로움도 어느 때인가 돌이켜 보면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춰버리곤 하듯이, 잡아두고 싶은 아련함도, 지긋지긋 견디기 어려운 고통 그 자체인 그 빌어먹을 인간도, 손 안의 물이 빠져나가듯 그렇게 흘러 떠내려가버리곤 합니다. 인생이 어려운 순간을 펼쳐 보일 때, 우리는 종종 그것을 피하거나 넘어가려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태도를 먼저 취하곤 합니다. 저 또한 그랬듯이 당신도 그럴테지요. 나이를 먹고 순진의 스킨이 벗어지는 나이듦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 이제는 새롭다는 것이 많이 사라질 즈음에- 그러한 고통의 시간과 상황을, 그 사람을, 다시금 느리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종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인식의 왜곡 현상일까요? 과학적으로 1초를 측정한다해도, 이 '왜곡'은 이 모든 현상을 관찰하기에 충분한 흐름을 제공합니다. 또한 신기하게도 그 '왜곡' 속에 마주했던 실체는 종종 시간을 타고 넘어 어떠한 특정 시공간에서 다시금 툭 하고 불거져 나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관통 현상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서 특별하게 와 닿는 지점들은 사실 '왜곡'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하나로 꿰어져 있는 같은 실체의 변주일 뿐 아닐까요? 가끔씩 겪게 되는 데쟈뷰 현상도 이런 실체의 왜곡과 변이, 변주의 과정 속에 튀어나오는 계획되지 않은 부산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것 자체가 실제다라는 전제하에서, 그 현상과 인물들이 또 그 속에 속한 몇몇 중요 인자들이 꺼꾸로 돌아가고 있을 때, 그 안의 주체가 붕괴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런 것들에 대한 몇몇 학습된 방어기제를 갈고 닦아왔지만, 그 효용성의 기한은 사실 오래지 않기에 전혀 뜻밖의 곳에서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