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인킴 Sep 07. 2021

저희 남편 걱정해달라고 온 게 아닙니다만

산부인과 의사의 오지랖

기나긴 8월이 지났다. 첫째 주는 첫째 유치원 방학, 둘째 주는 휴가(라고 쓰고 원정 육아라 읽는), 셋째 주는 첫째가 장염으로 아팠고, 넷째 주는 둘째가 돌치레를 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한 달 내내 피로가 누적되더니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질염이 온 것 같았다. 


둘째를 출산하고 11개월째, 아직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월경도 없다. 복직근 이개도 남아있고, 배꼽도 안 들어갔다. 회복이 더딘 것이 특별한 이유가 있기에 그런 것인지 걱정되서 몇 주 전 산부인과를 찾아갔지만 초음파 상으로 다 정상이라는 말만 들었었다. 아기 낳고 나면 복부가 완전히 회복하기 힘들고 모유수유 중이니 당연히 월경이 안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너무 당연한 걸 가지고 유난을 떠는 사람 취급을 당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질염 진단과 치료를 받을 이유가 있으니 다시 병원을 찾았다. 


토요일 오전 접수 시작하자마자 왔는데 벌써 대기 인원이 어마어마하다. 

"어느 과장님 진료 보시겠어요?" 

"음... 대기가 가장 짧은 분에게 볼게요." 

"그럼 5과 진료실 앞으로 가서 기다리세요." 


아... 5 과라니. 둘째 임신 중 담당 과장님이 응급 수술 가는 바람에 한 번 진료 봤던 사람이다. 내가 자연주의 출산한다고 하니까 뭐하러 굳이 그러느냐며 자기 부인은 깔끔(?)하게 수술해줬다고 말했던 오지라퍼. 약간 불안했지만 질염 검사와 처방만 받으면 되니까... 찝찝했지만 나의 시간을 아끼고 싶었다. 


약 15분 정도 대기 후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 앉았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제부터 분비물이 많이 나오고 부쩍 피곤해서 질염인가 싶어서 왔어요"

(진료 기록을 보더니...) "결국 자연주의 출산하셨네요? 참... 굳이... 애기가 4kg가 넘었네요? 둘째를 이렇게 크게 낳으면 자궁도 조금 쳐지고 요실금도 생길 수가 있어요. 질도 아무래도 완전한 탄력을 회복하기 힘들고요. 그러면 남편이 안 좋아하겠죠? 그런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이 될 시술도 있으니 고려해보세요."


마스크 속 내 입은 쩍 벌어졌고, 내 눈은 그 의사의 눈을 멍하니 노려보았다. 

'이건 대체 뭐 하자는 거지? 이거 성추행 발언 아니야? 산부인과 의사면 내가 묻지도 않은 시술 이야기를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무반응이 무안했는지 그제야 본분을 되찾은 모습으로 말했다. "그럼, 진료 보러 들어가시죠? 모유수유 중이니까 먹는 약은 안될 테고, 질 소독하고 질정제 처방해드릴게요." 


"분비물 검사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세균성 질염인지, 칸디다성 질염인지, 다른 문제인지 검사부터 하는 게 순서 아녔던가? 이미 신뢰가 떨어질 데로 떨어진 나는 다소 신경질적인 말투로 물었다.


"아 네, 그렇게 해드릴게요."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온다는 등의 안내도 없이 그렇게 5과 과장과의 마지막 진료를 보고 나왔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출산을 하든, 둘째 출산 이후 성관계를 '남편이' 좋아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나는 환자이자 고객의 신분으로 진료를 보러 온 것인데? 대체 무슨 권리로 나의 출산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며, 자기 앞에 앉은 환자를 걱정하긴 커녕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남편 걱정을 하는 것인가? 이건 오지랖이 아니라 선을 넘은 것 아닌가? 


아직도 혼란스럽다. 이 불쾌함을 어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출산 이후 여성의 몸은 산부인과에서 조차 아이 엄마나 남편의 아내로만 취급당하는 퇴물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온전한 산후회복과 나의 건강 때문에 병원을 찾았는데 산부인과 의사라는 사람들의 관심은 그게 아닌 느낌이다. 앞으로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최소한 여성 의사를 선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불쾌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긴 대기시간을 감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기요, 의사님. 저희 남편 걱정해 달라고 온 게 아니라, 제가 걱정되어 왔습니다. 더 이상 '산모'의 신분은 아니지만 제 몸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가치가 있어서 건강한지 살피고 질병이 있으면 치료받고자 온 겁니다." 

작가의 이전글 33. 임신선 위에서 튀어나오는 배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