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공간이 성격을 좌우할 수 있을까?
내가 정확하게 돈의 개념을 알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난 조금씩 늦된 아이다. 그래서 돈의 개념도 늦게 알게 된 것 같다.
부자와 가난의 개념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 가기 전까진 몰랐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거 보면 그 당시에 나에겐 꽤 충격이었나 보다.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친구와 놀기 위해서 따라갔다.
그런데...
그 친구 집은 2층 집이었다. 친구 방에 갈 때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의 형태는 다양하니 2층집이구나 했다.
충격은 밥 먹고 가라고 친구와 나에게 밥을 주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카레였다. 왠지 모르게 난 그때까지 집에서 엄마가 카레를 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70년대 후반의 시절이다)
그래서 낯설었고 그리고 서양 레스토랑에 온 것 같은 느낌( 이때까지만 해도 레스토랑에 가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였다.
더 충격은 계란 프라이를 반찬으로 주셨는데..... 아주 작고 귀여워서 어린아이가 먹기에 좋은 크기의 계란 프라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메추리알로 계란 프라이를 한 것 같다.
친구는 프라이를 다 먹고 더 먹고 싶다고 말하니 "몇 개 더 먹을래?" 물어보시고 그 숫자만큼 해주셨다.
나에게도 물어봤다. 더 먹겠냐고..... 난 괜찮다고.. 한 것 같다.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밥을 차려주신 분은 엄마가 아니고 일 봐주시는 분이셨다....
지금 보면 2층집에 저녁으로 카레를 먹고 계란 프라이를 먹는 것이 무슨 부자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에 살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 집 외에 다른 환경을 본 적 없는 나에겐 충격이었다.
그 2층집의 분위기... 맞다!! 그 집엔 피아노도 있었다.... 그리고 저녁 메뉴와 그릇, 그리고 메추리로 프라이를 해 먹는 모습. 그리고 엄마 외에 집안일을 해주시고 돌봐주시는 분이 있는 그 분위기.....
너무 생소했다.
이 날의 하루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기억에 자리 박고 있다.
왤까? 그냥 친구집에서 같이 밥을 먹은 특별할 것 없는 일인데....
생각해 보면 이날... 난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날인 것 같다.
먹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내가 사달라고 한 것을 못 사주신 것도 아니고.. 학용품이나 옷, 신발 이런 것들이 부족하고 갖고 싶은데 못 갖은 적은 없었기에 난 우리 집이 가난한지 몰랐다.
명품이나 비싼 물건은 엄마가 알아서 조정해 주신 것 같다.
물론 나는 엄마가 혹은 아빠가 사주신 대로 불만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좋은 물건, 비싼 물건, 싸구려 물건을 구분하기엔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지낸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날의 일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나와 다른 집에서 살고 나와 다른 음식을 먹고 , 나와 다르게 지내는 것 같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날 이후부터 나의 환경이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 집은 음식점을 하고 있었다. 집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고 가게 안에 방을 한 칸 만들어서 거기서 먹고 잤다.
낮엔 식당 테이블을 놓고 손님들을 받고 저녁은 테이블을 한쪽으로 치우고 이불을 깔고 잤다.
물론 부엌이라고 따로 있지 않았다. 식기도 마찬가지다.
식당의 부엌에서 만든 밥을 먹고, 손님들이 보는 텔레비전을 보고, 손님들이 먹는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그 테이블에서 숙제를 하고, 손님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손님들이 앉아서 식사하는 방에서 잠을 잤다.
친구들에게 이런 나의 생활과 삶에 대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친구를 집에 초대한 적도 없다. 물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난 말이 없는 아이, 조용한 아이가 되어 갔다.
왠지 주변의 친구들에게... 특히 조금 부티가 나는 친구들에겐 주눅까지 들고 말도 걸지 못했다.
왠지 모를 계급을 느끼고 있었다. 함부로 침해 질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지속적으로 쭉 만나는 아주 친한 절친이라고 하는 그런 친구가 없다.
성인이 된 후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도 초등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가끔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10대 시절에 봤던 친구들을 40대 후반에 처음 만나면서 오래된 이야기를
그리고 서로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 친구들이 기억하는 나는 조용한 아이다.
번호와 이름을 부르기 전까진 존재가 희미한 아이가 되었다.
빈부의 격차를 느끼고 알게 되면서 난 성격도 변하고 내 삶도 변했다.
늘 친구 사귀는 것을 어려워했다. 먼저 다가가는 법이 없다.
친구들이 나게에 다가오면 마지못해 응하는 그런 아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오랫동안 만남을 지속하지도 못하는 주변머리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 이후 우리 집은 이사를 많이 다녔다
왜 그렇게 많이 다녔는지 난 잘 모른다. 부모님들이 하던 장사가 잘 안 되었을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부모님은 자리를 옮겨 가면서도 계속 음식점을 하셨다. 그때마다 가게 한편의 방이 우리 집이었다.
가게와 함께 옮겨 다녔고 늘 가게에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게의 방에서 벋어 나는 날이 있었다.
부모님이 아파트를 하나 분양받아서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이땐 대학교 때였다.
아파트에 살면서 친구를 처음으로 집으로 오게 했다.
아파트 안의 내 방에서 친구와 같이 잠을 잤다.
아파트에 사는 게 뭐라고....... 나의 행동을 달라지게 했다.
이날 초대한 친구는 물론 강남에 살고 있는 부자 친구였지만... 그래도 아파트라는 공간이 나에게 용기를 줬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많이 기죽지 않았던 것 같다.
하하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이후로 아파트에서 쭉 살게 되지도 않았다.
여전히 부모님의 경제적인 능력이 나의 공간을 정해 주었다.
아파트에 살다가 반지하에도 살다가 빌라촌에도 살았다.
나의 나이 39세!
드디어 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내가 독립을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엄마는...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도 모르는 시기가 있었다.
집안이 풍비 박살이 난 상황이었지만 난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서 부모님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때였다.
내가 처음으로 독립해서 구한 집은 반지하였다.
반지하지만 널찍했고 나만의 공간이었기에 예전 부모님의 능력에 맞춘 공간에 있는 것보다는 부끄럽지 않았다.
반지하 집에서 빌라 1층으로 이사하고 빌라 1층에서 아파트 13층으로 이사할 때 난 비로소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 13층!! 비록 15평의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나에겐 안성맞춤의 집이었다.
이 아파트엔 많은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회사동료들도 서슴없이 초대했다.
가볍게 초대해서 차 한잔 마실 때도 있었고 , 밥을 해서 먹은 적도 있고 , 가볍게 술 한잔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잠을 자고 가기고 했다....
아파트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무엇을 했는지 , 어디서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물론 현재의 나에 대해서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여전히 어린 시절에 부끄러워하고 소극적이고 조용하게 있는 나의 성격이 그대로 있다.
그래서 누가 나의 개인적인 것을 물어보면 난 불편하다.
쉽게 말해서 mbti 성격에서 ㅣ 에 해당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
그리고 T라고 하는 이성적인 성격으로 고착화되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의 전반적인 영향을 준 것이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나의 공간이
남과 다른다는 것! 그것도 좋은 쪽으로 다른 것이 아니고 가난하다는 쪽으로 다른 공간이 되는 것이다.
공간.... 구체적으로 집!!!!
집이라는 공간은 그 사람의 인생에 너무나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을 조금만 더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난 역시 늦된 아이가 맞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