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버트 선생님의 가산점
1970년대 한국, 수많은 맏언니들이 가족을 대표해 도시의 공장으로 향했다. 그들의 땀과 희생을 양분 삼아 성장하던 동생들은 하루의 공부도 허투루 할 수 없었을 거다.
1990년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이민 가족들도 알고 있었다. 기회의 땅 미국에 어렵게 발을 들인 이상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걸. 부모는 한국에서 쌓은 경험과 지위를 내려놓고 몸을 낮추어 자녀들을 목마 태웠다. 아메리칸드림이란 과녁을 명중시킬 저격수는 바로 아이들이었으니까.
책임감으로 무장한 대부분의 한인학생들은 학업 성적이 우수했다. 하지만 국제공인 성실함으로도 정복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수업 참여도 (participation)였다. 과제를 빠짐없이 수행하고 시험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수업시간에 입을 열지 않으면 자비 없는 감점이 따랐다. 조용한 한국식 성실함은 적극적인 질문과 의견 표현을 독려하는 활발한 미국식 교육 방식과 충돌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어를 전혀 못했을 때는 질문만 알아들어도 감격스러웠다. 기초회화가 가능해지고 나서는 머리에 김이 나도록 할 말을 정리 중인데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이후 영어실력은 좋아졌지만 세상도 나 스스로도 '표현하지 않는 나'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때쯤 '수업참여도'란 버린 카드를 다시 내 손에 쥐어준 은인을 만났다.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필수과목 이외에 선택수업(elective)을 수강할 수 있었다. 다양한 과목들 중에 심리학 개론은 사람의 행동과 그 동기가 궁금한 십 대에게 꽤 매력적인 수업이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마음이 늘 궁금했던 나도 망설임 없이 ‘심리학’을 택했다.
진파랑색 사물함이 죽 늘어선 복도를 통과해 들어선 수업실엔 11학년(고2) 12학년(고3) 학생들이 한데 섞여 북적이고 있었다. 나긋한 목소리와 따뜻한 눈빛의 칼버트 선생님이 이끄는 수업은 회를 거듭할수록 재미와 깊이를 더해갔다.
칼버트 선생님의 수업 커리큘럼 중 '인생계획'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2인 1조 가상 동거 활동에 끌려 수강을 결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둘 다 하기 싫은 화장실 청소당번을 어떻게든 정해야 했고 피자와 사과주스의 조합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옥신각신했다.
가상 예산으로 공동 가구와 집기 쇼핑목록을 만들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야 했다. 실제 커플이 수업을 함께 수강했다가 이 활동을 계기로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으니 꽤 현장감 있는 프로젝트였다.
짧지만 강렬했던 동거 경험을 토대로 이상적인 결혼관과 배우자상, 자녀계획에 대한 토론도 이루어졌다. 신이 나서 너도 나도 의견을 더했지만 난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나 같은 사람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거 같았다. 낯선 나라에서 나를 나답게 해주는 많은 것들을 잃은 채로 보낸 십 대의 자아는 연약했고 왜곡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1인분의 역할을 못하는 열등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외향적이고 의사표현의 분명한 학생들이 인기를 독식하는 이곳에서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의식 저 깊은 곳엔 내 일그러진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또 다른 마음이 일렁이고 있었다. 난 누구보다 주관이 뚜렷해 할말이 많은 사람이었고 어떻게든 내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칼버트 선생님이 수업참여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조금 특별했다. 모두에게 쩌렁쩌렁 울리지 않아도 괜찮으니 말해보라는 듯 가산점(bonus points)을 주었다. 미국학교에서 점수를 올릴 기회를 주려고 학기말에 보너스 과제를 주는 일이 흔했지만 칼버트 선생님처럼 학기 내내 모든 과제에 가산점을 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과제가 1,2,3번의 문제를 물어봤다면 나는 각 번호에 a, b, c의 디테일을 더하고 4번 5번까지 확장해 답변을 했다. 칼버트 선생님은 내가 제출한 모든 과제에 가산점을 주었다. 상처 입은 내 모습 그대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었다.
중간고사를 마친 후 심리학 개론을 수강 중인 전 학생의 학기 중간 점수가 교실 입구에 게시되었다. 다들 자신의 점수를 확인한 후 누가 최고점수를 받았는지 궁금해했다. 가장 높은 점수 옆에 나란히 놓인 학생고유넘버는 내 것이었다.
놀란 나는 고개를 돌려 칼버트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내가 나를 믿지 못했을 때 나를 믿어주었던 그녀가 날 향해 찡긋 웃어 보였다. 이날 이후 나는 더이상 침묵 속에 갇힌 열등한 학생이 아니었다.
오늘의 노래: Céline Dion의 Because You Loved Me
https://www.youtube.com/watch?v=gMOovDrWWiI&list=RDgMOovDrWWiI&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