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 배우 김수미 씨가 고혈당 쇼크로 별세했다. 총 1088부작으로 22년간 전파를 탄 국민드라마 '전원일기'로 이름을 알렸던 故 김수미 배우. 처음 드라마에 출연했을 당시 31살의 나이에도 백발의 일용엄니를 이질감없이 소화해 낸 필모가 그녀의 당찬 성격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많은 이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선사했던 그녀를 기리는 생전 영상들이 각종 플랫폼에 나타났고 나는 방송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했다.
그 삶의 흔적을 따라가다 마주한 한 예능 프로그램 하이라이트 영상 속 그녀는 인생에서 힘들었던 순간을 회상하며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14살 어린 나이에 홀로 서울 유학을 시작해 18살 때 전보로 어머니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이후 삶을 살아가며 힘든 순간들을 맞아할 때마다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결핍은 간이 잘 안 된 음식을 먹는 느낌과도 같았다고...
결혼을 하고 6살 2살 아들과 딸을 기르다 삶이 너무 고되어 친정에 며칠만 다녀올 수만 있다면 좀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들 손을 잡고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자신에겐 돌아갈 친정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어디라도 떠나야 했다. 막상 기차에서 내렸을 때 갈 데가 없어 우동 한 그릇씩을 먹고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던 발걸음, 다다른 종창역에서 그녀가 측량했을 슬픔의 깊이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슴이 미어지는 절망감 앞에서 그녀는 무너지기보다 다짐을 했다.
어떻게든 꼭 살아내서...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내 자식들은 누리게 해 주리라.
그녀의 어린시절, 시집살이를 견디다못해 친정으로 피신 온 언니를 죽어도 시집에가서 죽으라며 모질게 문전박대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할 정도로 고된 시집살이가 디폴트였던 시대를 살기도 한 그녀. 하지만 다 그런 거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은 그 서글픈 순환을 잘라내고 싶었다.
훗날 자신이 친정엄마가 되었을 때 와서 배부르게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워 잠이 든 딸, 거실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손주를 바라보며 그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간이 모자란 음식으로는 채울 수 없는 허기의 고통은 그녀를 무너뜨리기보단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오랫동안 품고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따뜻한 친정이란 꿈을 닮아갔다.
'부모님께 보내는 러브레터'라 불리는 한국계 미국인 피터 손 감독의 2023년작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진 관습이 새 옷을 입는 장면이 목격된다. 엘리멘탈 시티로 떠나며 아버지와 고향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버니. 이민은 곧 뿌리를 등지는 행동이라 믿었기 때문일까 자신을 외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버니가 기억하는 고향의 마지막 모습이다.
새로운 땅에서 태어난 이민 2세 딸이자 버니의 모든 꿈이기도 한 앰버. 금지옥엽 키운 딸이 성장해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독립의 과정을 받아들이는 진통이 있었지만 자신을 향해 큰 절을 올리는 앰버를 외면하지 않고 맞절로 환송한다. 분명 버니는 많은 날들을 딸을 보내주는 날을 그려보고 또 그려보며 연습했을 테다. '나의 출발은 한없이 외로웠지만 내 딸만큼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설레며 떠날 수 있게 따뜻하게 축복해 주리라.'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을 다른 이에게 해주며 아팠던 자신의 과거마저 치유되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이민자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이사 갔을 때 도서관에서 발견한 '외국어도서코너'는 신세계였다. 한국어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던 내게 위로였고 기쁨이었다. 소설, 자기개발서, 에세이 등등 다양한 도서를 읽었지만 그중 내가 파고들었던 분야는 관계를 다루는 심리, 교육 관련 도서들이었다.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겪은 결핍과 슬픔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지금 돌아보면 '흔들리는 부모들'이란 제목의 책을 필사해 가며 읽고 있는 십 대 딸아이를 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일 텐데 교육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며 부모님과 세상을 향해 정의의 이름으로 요란하게 항의하는 대학생 딸에게 "너는 이만큼 더 배웠는데 당연히 더 잘해야지."라고 말하던 엄마. 그 씁쓸함과 서운함엔 여러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고 지식의 수준을 높인 다음 세대가 더 잘해주기를 바라는 소망과 응원의 마음도 담겨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곧 봄이 오면 이사를 가는데 그전까지 시어머니와 한지붕살이를 하고 있다. 결혼하면 1년가량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는 상황이란 소식이 주변에 전했을 때 많은 이들이 '님아 그 길을 가지 마오.' 라며 걱정해 주었다. 나 역시 결혼 전에는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무시무시한 시월드 스토리에 시어머니와의 동거가 몹시도 두려웠음이 사실이다. 게다가 난 수평적인 문화를 상징하는 미국물을 드럼통으로 마신 교포 아닌가. 그러나 모든 일은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 나의 시어머니는 당신이 겪은 어려움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함께하는 시간이 부담이 되기보다 든든하고 감사할 때가 많았다.
故 김수미 배우도 엘리멘탈의 버니도... 악순환이라고 불리는 반복되는 슬픔의 끝을 보려는 이들 모두는 고통의 순간을 기억하며 살아갔을 거다. 분노의 몸집을 불려 누군가를 보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은 다른 엔딩을 만들기 위해서... 그 생각을 평생 품고 살며 수 없는 시뮬레이션을 돌렸기 때문에 그 상황이 닥쳤을 때 해낼 수 있었을 거다.
인간은 간절히 그렸던 삶을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