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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망 Dec 09. 2023

파리에선 누구나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파리 #3

파리에선 누구나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그저 구경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 프랑스 소설가 장 콕토 -


2023년 5월 나는 첫 장편소설 <띵동! 당신의 눈물이 입금되었습니다>를 출간하며 작가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데뷔작은 초메가히트작은커녕 소위 대박이라고 불리는 판매량을 내지 못했다. 그나마 2쇄를 찍었고 대만과 태국 2개국에 수출되었으니 아주 후하게 쳐줘서 중박정도를 쳤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하루빨리 후속작을 내고 싶은 갈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유럽여행에 천만 원 이상을 지출하였기에 투자한 만큼 유의미한결과가 있길 바랐다. 뭐를 먹어도 그냥 먹지 말고, 뭐를 봐도 그냥 보지 말고 Input을 이렇게까지 넣어줬으니 신작이라는 Output을 뽑아내라 압박하며. 11년 전엔 여행 장소 자체에 집중했었는데 이번엔 그렇게 되질 않았다. 파리 여행 3일 차, 그 압박감이 최고조에 달한 날이었다.

2012년 3월 19일 오전 10시, 오늘은 흐리고 비가 온다. 성당 앞 광장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숫자에 밀리지 않는 비둘기들도 있다. 파리 선진국 아닌가? 지하철에 왜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걸까? 계단이 정말 너무 많다. 투덜거리며 계단을 올라와 뒤를 돌아봤다. 미.쳤.다. 장대하고 웅장하고 이국적이고 분위기 있고 미쳤다 미쳤어. 낭만의 도시 파리 그리고 노트르담 내가 이곳에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2023년 10월 11일 저녁 7시, 나는 지금 노트르담 대성당을 옆으로 바라보고 서 있다.

2019년 참담했던 노트르담 화재 사건 때문에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오른쪽 벽면은 모두 공사 중이고 내부 입장도 불가하단다. 그저 멀리서 오랜만에 보는 성당에게 내적 안부인사를 건네본다. 멍하게 성당을 응시하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빅토르 위고는 29살 때 <노트르담의 꼽추>를 썼다던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저런 대작을 쓸 수 있지? 길을 걷다 문득 생각났을까? 집필하는 동안 노트르담에 몇 번 왔을까?"

나는 꼽추 콰지모도가 죽은 에스메랄다를 품에 안고부르는 노래의 재생이 끝날 때까지 빅토르 위고라는작가의 천재성과 집필능력만 떠올리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이곳에서 배우가 아닌 그저 구경꾼일 뿐이었다. 파리라는 아름다운 작품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주어진 그 순간에 집중하는 배우가 아니라, 그저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유명한 작가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나와 비교하며 여기서 뭐 하나라도 뽑아 먹을 것이 없을까 군침을 흘리는 하이에나 같았다.


이 하이에나는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 '위대한 개츠비'의 피츠 제럴드 같은 작가들이 방문했던 유서 깊은 서점이자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남녀주인공의 작별과 9년 뒤 재회 장소로 쓰인 셰익스피어 컴퍼니서점에서도 입맛을 다시듯 중얼거렸다.

서점 <셰익스피어 컴퍼니>

"저렇게 유명한 작가들은 이곳에 왜 방문했을까? 여기만 보고도 영감이 막 떠올랐을까? 나는 하나도 안 떠오르는데…"


그 이후로도 퐁뇌프 다리, 루브르 박물관, 그랑빨래 미술관, 에펠탑 앞까지 가서도 이런 비루한 생각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진 몰랐다. 내가 오늘 하루동안 나 자신에게 얼마나 참담한 짓(?)을 벌였는지.

나의 무지함을 일깨운 건 야경 투어를 인솔해 주신 가이드님의 말씀이었다.

"손님 여러분, 투어의 마무리로 헤밍웨이의 말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리에서 젊은 시절을 보낼 수 있다면, 평생 기억 속에 축제가 열릴 것이다.

구태의연한 표현을 하고 싶지 않지만 그때의 나를 묘사하기엔 이 문장밖에 없을 것이다.

머리를 망치로 띵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맞다. 11년 전에 파리에 왔을 때 좋은 추억, 나쁜 기억 모두 오롯이 나의 11년이란 시간 안에서 축제의 파티가 돼주었다.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웃고, 나쁜 기억을 하소연하며 또 웃고.

팡! 팡! 쏟아질 듯 터져대는 불꽃놀이가,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샴페인이 되어주었다.

이번 유럽 여행도 오늘 하루도 그리고 지금 내가 에펠탑 앞에 서 있는 이 순간도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11년 안에서 나의 기억 속에 파티가 될텐데. 내가 오늘 그 파티를 망쳐버렸네...


정신 차리자. 구경꾼은 집어치워. 나는 지금부터 배우가 될 거야, 여기 파리에서. 다가올 11년의 파티가 화려하고 아름답고 다채로울 수 있도록 황홀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과 샴페인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에 온 힘을 다하고 싶다.


*당시의 저의 생각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독자님들도 살짝 흐린눈으로 봐주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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