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입 훈련

by 최소망

“여러분, 이제 타인공감 트레이닝이 있으니 함께 가시죠! 그곳에 가면 이곳 트레이닝룸에 팀장인 Soona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Sue는 트레이닝 룸 제일 안쪽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엔 그녀의 말대로 “영상학습 자료실”이라고 쓰여있는 문이 하나 있었으며 trainee (트레이닝받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살짝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오라는 Sue의 눈짓에 일행 모두는 조용히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영상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불을 다 껐기 때문에 앞이 안 보여서 루니가 엠마의 발을 아주 세게 실수로 밟았지만 엠마는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을 간신히 틀어막고 앞서가던 그레이스에 뒤를 따라 어두운 실내로 들어갔다. 실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방에는 몇 명에 사람들이 있고 다들 자유로운 자세로 어떤 영상을 함께 시청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한쪽 손으로 뒷목을 잡고 옆으로 누워서, 어떤 사람은 작은 공 모양의 스티로폼이 잔뜩 들어 모양이 이렇게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여지는 bean bag (빈백)에 반쯤 기대서 또 어떤 사람은 의자에 꽃꽃히 허리를 펴서 앉은 상태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영상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였다.



한국, 서울에 지하철 역 중 하나인 강남역이 화면에 비치고 있었고 카메라 무빙이 천천히 강남역 12번 출구로 향해 밖으로 움직였다. 강남역 12번 출구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1평 남짓 되는 아주 작은 컨테이너에서 하루 종일 수십 명의 사람들의 구두를 닦는 김삼섭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청각 장애인이었다.


가게 입구에는 날짜 지난 달력 이면지를 두껍게 모아 백과사전처럼 만들어 놓은 두꺼운 노트가 있었고 노트 상단에는 손님들 구두 밑창에 어쩌다 딸려 들어온 긴 노끈으로 매달아 놓은 볼펜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손님들의 말을 들을 수 없는 할아버지는 그 노트를 의지하여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구두를 제시간에 맞춰 닦곤 했었다.


가끔씩 어떤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듣지 못한다는 걸 알지 못한 채 “할아버지! 할아버지!”불러도 할아버지가 다른 손님이 맡기고 간 구두를 열심히 닦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자 삿대질을 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런 손님들이 떠나간 후 다큐멘터리를 찍는 제작진이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일하는데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입구에 있는 노트에 글씨로 적어서 보여드리니 할아버지는 싱긋 웃으며 구두 닦을 때 필요한 도구를 하도 많이 걸어놔서 더 이상 자리가 없어 보이는 벽 사이에 걸린 사진 한 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할아버지가 가리킨 사진에는 한국인이 아닌 다른 인종으로 보이는 소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옆에는 그 소녀에게서 온 편지 몇 장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제작진이 저 친구가 누구냐고 글씨를 써서 할아버지께 보여 드리자 할아버지는 말했다.


“저기 먼~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내 손녀입니다” 할아버지는 15세쯤 되어 보이는 사진 속에 소녀가 1살일 때부터 후원을 시작해서 15년째 후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소녀 역시 자기처럼 청각 장애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힘들게 구두 닦아서 일하시는 돈을 할아버지 쓰시지 왜 다른 이에게 쓰시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저 친구는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길 바라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본인이 청각 장애인이라 사람들에게 끝없는 놀림과 무시를 당한 얘기를 덧붙이며 옛날 생각 때문에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빨리 훔쳤다. 하지만 이내 웃어 보이시며 “다음 주에 저 친구를 만나러 저 친구가 살고 있는 아이티에 갈 겁니다”라고 했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평생 힘들게 구두를 닦아 지구 반대편에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손녀를 15년이 넘는 세월을 넘게 후원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었고, 그 소식을 들은 후원단체에서 할아버지가 그의 후원 아동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할아버지는 태어나 처음으로 만든 여권을 손에 꼭 쥐고 역시 생애 처음인 비행기를 타고 아이티로 향했다. 그 길이 얼마나 먼지 서울에서 월요일 출발했는데 아이티에 도착해보니 거의 수요일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티 공항에 착륙한 후에도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리고 달려 드디어 사진 속 소녀인 이스텔린을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15년 동안 편지를 통해서 서로를 정말 잘 알고 있었고 지난 15년 동안 편지에 첨부해서 보낸 사진 덕분에 단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스 텔린은 소리를 지르며 평생 자신을 후원해준 후원자님에게 달려와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고 할아버지 역시 그렇게 보고 싶었던 이스 텔린을 끌어안으며 정말 보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두 사람이 내는 울음소리와 말소리는 옆에 있던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온 방송국 제작진만이 들을 수 있었다.




엠마는 최대한 참으려고 했지만 김삼섭 할아버지와 이스텔린이 부둥켜안고 우는 맨 마지막 장면을 보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졌다. 엠마는 재빨리 눈물을 훔치며 주변을 살펴봤다. 하지만 Sue가 이끄는 교육생들을 포함해 영상자료실에 있었던 사람들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몇몇은 하품을 하고 있거나 졸고 있었다.


제일 놀라운 사람은 다름 아닌 루니였다. 루니는 나이가 어려서 화면에 장면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장면이나 음악이 매우 슬프고 분위기 자체도 유쾌하고 재밌지가 않았는데도 계속 웃고 있었다. 심지어 엠마가 옆에서 울고 있는데도 엠마를 빤히 바라보면서 계속 웃었다. 엠마는 약간 놀랐지만 놀란 척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울지 않는데 혼자 눈물을 보인 것이 괜히 민망해서 헛기침을 과하게 여러 번 하며 주위를 돌렸다.


영상이 끝나자 암전 되어있던 실내가 환해졌고 스크린 오른쪽에 한 여자가 엠마를 흘끔흘끔 보면서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루니를 보면서도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엠마는 그녀가 자신과 루니를 바라본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애써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며 모르는 척했다. 잠시 뒤 노트에 무언가를 한참 적은 여자가 일어나며 말을 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타인공감 트레이닝 센터의 팀장 Soona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이곳은 여러분이 타인의 감정에 동감하는 훈련을 하는 타인공감 트레이닝실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을 살아내느라 가족이나 친구 타인들과 함께 감사, 감동, 공감 그리고 기뻐하는 능력이 많이 퇴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대부분 지인들과의 연락은 뒷전으로 한채 일에 몰두만 해왔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이 곳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많이 잃어버린 기능들을 회복하여 타인들과 기쁘고 감사한 감동적인 시간들을 많이 공유하여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감과 행복감을 누릴 수 있게 도와드리며 또한 추가적으로 감정 눈물들이 생성되어 수익으로 창출될 수 있도록 함께 돕고 있습니다."


“아까 밖에서는 그룹 액티비티 수업으로, 주어진 상황극 안에서 감사와 감동 기쁨을 공감하는 연습을 하게 되고요. 이쪽 안쪽에 영상학습자료실에서는 감동적인 영화, 다큐멘터리, 책을 활용하여 그 작품 안에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하여 가짜가 아닌 진짜 진정한 공감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트레이닝하고 있습니다.


평상시 남의 아픔과 고통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했던 분들은 눈물 화폐 시스템으로 바뀐 상황에서 감정 눈물이 매우 부족하여 수입을 얻는데 매우 불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을 훈련해서 모든 분들이 진실로 공감하고 덧붙여 수익도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구조의 화폐 시스템을 구현해 내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자, 영상을 보신 분들은 4명씩 팀을 짜서 곳곳에 서있는 보조트레이너들에 도움을 받아서 방금 본 영상에 내용을 보고 느낀 감정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나눠드린 감상문 종이에 형식에 맞게 간단하게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여기저기서 귀찮다는 듯한 푸념 섞인 한숨들이 들려왔다. 보조트레이너들은 싫다는 사람들을 붙잡고 팀을 꾸리고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권하기 시작했다.


그런 분주한 이들을 뒤로하고 Soona는 루니를 향해 걸어가 질문을 건넸습니다.

“안녕? 나는 Soona라고 하는데 너는 이름이 뭐니?”

“앙녕하세요 저는 루니예요. 9쌀이예용” 하면서 여전히 환하게 웃어 보였다.

“루니야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아까 저 영상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어?”

“슬퐀어요. 항아버지랑 저 느나가 만난 장명요” 발음이 불분명한 상태였지만 루니는 착실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루니는 슬펐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어?”

“승펐지망 눙물은 앙나요, 낭 맹날 웃어요. 웃음이 나요”




9년 전, 겨울을 견디고 기특하게도 봄이 온 걸 알아차린 많은 새싹과 꽃들로 둘러 쌓여 있는 한 국립 대학교, 붉은색에 웨이브 머리를 한 예쁜 아가씨 한 명이 교정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나무 아래에서 공상을 하고 있다. 귀에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햇살, 나무,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생각이 이끄는 대로 행복한 상상들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엮어 주인공이 하기 좋은 대사까지 연습해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의 모습을 몇 달째 지켜보고 있는 Jason은 차마 그녀에게 말 한번 걸어 보지 못하고 오늘도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다. 잠시 뒤 Jason이 짝사랑하는 그녀의 친구들로 보이는 몇몇 여자들에 목소리가 그에게 점점 더 크게 느껴질 때쯤 그녀는 친구들을 향해 오후 1시에 강한 햇살 같이 화사하게 웃으며 손을 높이 들어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날도 그는 결국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Jason은 땅에 눈을 고정한 채 한숨을 푹푹 쉬며 교정을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살짝 두 번 두드렸다. 그는 돌아봤고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바로 그의 짝사랑인 그녀였다. 그녀가 그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는 순간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서투른 에스파냐어로 그에게 얘기했다.

“친. 구. 할. 래. 요.? “


Jason과 그녀가 친구가 된 후에 Jason은 깨달았다.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매우 활발한 수다쟁이였다는 걸. 처음에 언어가 매우 부족해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음악을 듣고 책을 보거나 공상을 하는 걸로 공강 시간을 메웠던 그녀가 Jason을 포함한 많은 친구들을 사귀자 날이 갈수록 에스파냐어가 늘었고 그녀는 귀여운 수다쟁이가 되어갔기 때문이다.


Jason과 그녀가 친구가 된 지 1년째 되던 날 그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내.. 내가 말.. 주변이 없는 건 너도 알지?..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좀… 앞뒤가.. 안맞.. 아니.. 두서가 없어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한 글자씩 얘기할게. 온 진심을 다해서 좋아해..” 매우 촌스럽고 근사하지도 않고 뻔한 고백이었지만 그의 진심을 느낀 그녀에게는 뻔하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백이었다.


몇 년 뒤, 한 병원, 눈이 매우 크고 예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10시간에 진통을 겪은 산모가 숨을 헉헉 거리며 간호사들이 안겨주는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이 아이에 뺨 위에 반짝 거리며 떨어졌다. Jason도 함께 울며 그녀에게 말했다.

“머들! 정말 고마워 수고했어”




“왜 그러시죠 선생님?” 머들이 Soona와 루니 사이에 끼여서 날카로운 소리로 물었다.

“머들, 저쪽에서 잠깐 따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떨까요?, 여러분 잠시 실례할게요”

Soona는 남은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트레이닝용 감동 영상을 하나 재생시켜 놓고 머들과 루니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서 Soona가 쥐어준 막대사탕을 요리조리 굴려 먹고 있는 루니를 한번 본 뒤 Soona는 머들을 향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루니가 계속 웃는 게 질환 같아요”

황당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머들이 대답했다. “웃는 게 병이라고요?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우리 루니는 항상 행복하고 기쁜 아이예요. 그래서 그런 거지 절대 병 같은 거 걸린 거 아니라고요”


“머들, 진정하시고 제 말 들어보세요. gelastic seizure라고 해서 발작이 웃음으로 나타나는 거라 감정이 슬프고 화가 나도 계속 웃게 돼요. 에인절만 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해요. 언어에도 지장이 있고 계속 자주 넘어질 거예요” 아까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생긴 팔꿈치와 무릎에 상처들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모두 루니에게 해당하는 일들이라 머들은 부정할 수가 없어 그녀의 설명을 멍하게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은 머들은 도무지 열리지 않는 입을 겨우 떼어 내어 질문을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은 저희 트레이닝센터와 연계되어 있는 병원에 가셔서 검사와 전문의의 소견을 들으신 후에 만일 루니가 수술이나 시술을 통해서도 웃음 발작이 호전되어있지 않으면 눈물로 전혀 소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복지 연계 시스템을 통해서 장애 지원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일정 금액을 지원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너무 염려 마세요”


머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기운이 하나도 없이 방에서 걸어 나왔다. 루니는 그런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서 있었다. 아주 환한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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