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뒤 약속된 문 앞에서 모두가 Sue를 기다리고 있었다.
엠마는 이 새로운 모든 상황이 낯설었지만 이유를 모르게 이 낯선 눈물 화폐 시스템이 맘에 들었다.
“일을 그 따위로 처리하면 어떡해? 나 지금 잠깐 나와있어. 1시간이면 들어가니까 일 처리 똑바로 하고 기다려 안 그러면 당신들. 다 사직서 쓸 각오 해야 돼! 알았어?” 데이먼이 하는 전화 소리에 엠마를 포함한 사람들은 슬금슬금 데이먼이 서 있는 자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발걸음을 조심히 옮겼다.
그때, 트레이너 담당자인 Sue가 나타났다. “여러분, 이제부터 간단하게 눈물 트레이닝 센터에 훈련실들을 하나씩 둘러볼 거예요.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분들의 훈련에 방해될 수 있으니 아주 조용히 저를 따라 참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쪽으로 가실까요?” Sue가 트레이닝 센터 안쪽에 연결되어있는 커다란 문을 열자마자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은 엠마가 트레이닝 센터를 향해 걸어갈 때 봤었던 터널과 똑같이 투명하게 속 안이 보이는 유리 재질로 되어 있고 계단 한 칸 한 칸 모든 층계마다 수증기가 가득 차고 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 모든 물방울들은 한 방울씩 모여 마치 어느 곳으로 옮겨지고 있는 듯했다.
“여러분 이 계단은 눈물 트레이닝실로 향하는 눈물 계단입니다. 이 유리관 안에 있는 눈물들은 이곳으로 모인 눈물들을 깨끗이 정화하여 연결 관을 따라 각각 필요되는 부서로 이동하게 됩니다. 투명해서 계단을 올라갈 때 약간 무섭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아주 단단한 강화유리로 되어있어서 절대 계단이 부서지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고 따라오세요”라는 Sue의 말에 모두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계단을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에 천천히 걷는 게 습관인 엠마는 서둘러 계단을 오르려고 하지 않고 다른 일행들이 모두 출발 한 뒤 마지막으로 첫 계단에 발을 옮기려고 했다. 그때 엠마 바로 앞에 있던 루니가 중심을 못 잡고 넘여졌다. 루니의 엄마인 머들은 계단을 오르면서도 계속해서 전화를 받느라 루니를 신경 쓰질 못하고 있었다.
루니를 일으켜 세워주며 엠마가 말했다. “루니, 괜찮니?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어린 나이에 울 법도 한데 씩씩하게 일어나서 또다시 웃어 보이며 루니가 말했다 “괜찮아요”
“조심해야지, 급하게 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한 계단씩 올라가 누나가 뒤에 있을게”
“네~”라고 대답하는 루니의 대답이 들리지 않을 만큼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루니가 또 넘어진 것이다.
너무 놀란 엠마는 또다시 루니를 일으켜 세웠다. “루니! 어쩜 좋아… 다치지 않았어?? 아프지 미안해……. 누나가 손을 잡고 올라가는 거였는데 정말 미안해 누나가 정말 미안해”
그런 엠마에 손을 꼭 잡으며 루니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엠마, 전 정말 괭. 차. 나. 요”
아직 어려서 그런지 루니는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루니에 두 손을 꼭 잡고 엠마가 말했다 “누나랑 같이 올라갈까, 한 계단씩 천천히 가는 거야 어때?” 루니는 엠마의 따뜻한 손을 꼭 잡으며 말없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계단의 개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루니랑 한 계단씩 천천히 걸어 올라가느라 제일 늦게 도착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입구에서 엠마와 루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통이 나 있는 데이먼은 “빨리빨리 좀 올 수 없습니까? 다른 사람 기다리는 것 안보입니까?”라며 핀잔을 주었고 루니의 엄마인 머들은 “어머, 엠마, 미안해요. 내가 일 전화를 받느라고 루니를 못 봤어요. 별 일 없었죠? “라고 말하며 엠마 손을 잡고 있던 루니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아이의 손을 잡고 엠마랑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엠마는 아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의 기분이 나빠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렇다고 루니가 있는데서 아이 때문에 늦었다고 하는 것은 상처가 될 것 같아 억울함에 치밀어 오르는 속을 꾹 참고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대체하고 루니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그런 엠마를 트레이너인 Sue가 빨간색 뿔테 안경을 오른손 검지로 살짝 추켜 올리면서 유심하게 볼 뿐이었다.
모두들 Sue를 따라 첫 번째 트레이닝 방인 “감동, 기쁨, 행복 트레이닝룸”에 입장했다. 이 곳은 맨 처음에 갔던 신규 트레이닝 센터와는 다르게 Green과 Yellow 색깔에 역동감 넘치는 벽면과 기구들 그리고 다양한 소품들과 집, 거실, 학교, 공원 등등 다양한 장소의 세트들이 마련되어있었다. 마치 영화 촬영장 같았다. 그곳에는 여러 명에 사람들이 각각 지정된 장소에서 주어진 상황에 맞는 상황극을 하고 있었다.
5성급 호텔 레스토랑처럼 보이게 꾸며 놓은 세트장에서는 20대 젊은 남자,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이벤트를 받고 감동의 눈물을 흘려보세요”라는 미션카드를 들고 오늘 여기서 처음 본 남자가 자신의 남자 친구 인척 상황극을 하면서 무릎을 꿇고 꽃다발을 내밀고 있는 모습에 맞춰 감동의 눈물을 흘려보려고 억지로 입으로 내는 소리로만 울고 있었다. 엠마는 중간의 그녀가 살짝살짝 자기 볼을 꼬집으면서 연기를 하는데도 눈물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을 보고 살짝 웃었다.
한편, 반대쪽 집에 거실처럼 보이는 세트장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제 당신들이 한 가족이라며 한 명씩 서로에게 encouraging (격려)이 되는 덕담을 나누고 서로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려보라는 role play 미션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엄마 역할을 한 여자가 딸 역할을 하는 여자한테 “너는 아빠 같은 남자 만나서 엄마처럼 살지 말고,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길 바라”라고 했는데 아빠 역할을 맡은 남자는 헛기침을 두 번 해서 엄마 역할의 여자에게 눈치를 줬고 딸 역할에 여자는 엄마 역할하는 여자가 본인의 결혼을 실패한 것처럼 얘기하면서도 너는 꼭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라는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한다고 지나가는 진행요원을 붙잡고 항의를 했다.
결국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엄마 역할 여자와 딸 역할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트레이닝룸 전체에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진행요원들이 몰려와 가족 상황극 했던 사람들을 다 분산시켜 다른 팀으로 보내 버렸다.
일행은 여기저기서 억지 상황극으로 거짓 감동의 눈물을 흘려보려고 트레이닝받고 있는 사람들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Sue가 사람들의 초점 흐려진 눈동자를 원래 자리로 돌아올 만한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참관만 해야 하지만 방금 한 팀이 사정상 트레이닝이 종료되면서 (말이나 손가락으로 어디라고 짚어서 얘기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방금 전 해산된 팀 쪽을 흘깃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에게 잠깐 트레이닝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세트장이 배정되었어요. 우리 모두 ‘거실’ 세트장으로 이동하시죠”
그곳엔 습기를 잔뜩 머금어 머리가 붕 떠 있고 목에는 “트레이너- 마크”라고 적혀 있는 이름표를 걸고 있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일행을 발견하자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role playing 상황극 트레이너 마크라고 합니다. 오늘 특별히 여러분들과 잠깐이지만 감동, 기쁨, 행복 한 감정을 느낄 때 눈물을 흘리는 트레이닝을 해볼 거예요. 그렇다고 가짜로 눈물을 흘리 시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것도 결국엔 습관 같아서 진심으로 감동받고 기쁨과 행복을 느껴 본 사람들은 다른 순간에 놓였을 때도 진심으로 감동받고 행복해서 눈물이 나곤 하죠. 우리는 치열하고 답답한 세상에서 사느라 이런 감정들에 많이 무뎌지고 잊고 살아왔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감정 세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제 어이가 없다 못해 이런 짓 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경멸스러운 데이먼은 눈으로 이 모든 상황과 마크를 노려보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멍하게 마크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만을 바라보며 아연실색하고 있었다.
“자 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에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라며 머들에게 먼저 이름을 물어본 마크는 머들에게 가족에서 엄마 역할을 맡아달라고 하고 엠마와 그레이스에게는 각자 첫째, 둘째 달 그리고 루니에게는 막내아들의 역할을 맡겼다.
데이먼에게 아빠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다가 데이먼이 쏘아보는 눈빛에 한발 물러난 마크가 가족의 아빠 역할을 자청했고 이런 바보 같은 역할극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데이먼에게 제일 비중이 없으니 그냥 서서 있으면 된다며 삼촌 역할을 떠밀듯이 배정해 주었다.
Sue는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영화감독님이나 스태프처럼 밖에 서서 팔짱을 꼬고 마크와 일행들이 하는 역할극을 지켜봤다.
마크는 이제 모두 동그랗게 원을 그려서 서달라고 요청했고 모든 팀원들은 마크를 중심에 두고 뺑 둘러 원을 만들어 섰다.
“정규 커리큘럼 과정에서는 여러분이 서로가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며, 행복, 기쁨, 고마움, 감동 같은 감정을 진심으로 느껴야 하지만 정식으로 훈련을 받지 않았으니 오늘은 제가 여기 계신 한분 한 분께 Encouraging과 challenging을 드릴 거예요. 최대한 진심을 담아 감정을 느껴보세요”
마크는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서 흠흠 헛기침을 두 번 하더니 정말 아빠들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흉내를 내면서 그레이스를 향해 덕담을 시작했다.
“내 사랑하는 둘째 딸, 그레이스 야. 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야. 외모는 물론이고 너의 마음까지 말이다. 네가 말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알고 있어. 네가 평소에 쓰는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까지 말이야. 그레이스, 너라는 사람으로 있어줘서 정말 고맙구나”
엠마는 슬쩍 그레이스의 표정을 살펴봤다.
그레이스는 너무나도 따스한 말에 살짝 감동을 받은 눈치였지만 이 오글 거리는 상황극에 제일 첫 번째로 자신이 지목되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금방 마크의 눈을 피하고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던 생수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런 그레이스의 불편함을 느꼈는지 친절한 마크는 몸을 돌려 엠마를 쳐다봤다.
엠마는 두 번째 대상자가 자기라는 사실에 흠칫 놀랐지만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마크를 바라보았다.
“내 사랑하는 큰 딸, 엠마. 너는 마치 깃발 같구나. 빨강, 초록, 분홍, 보라 등등 형형 색색으로 이루어진 만국기 말이야. 그러니 부디 그 자리에 머물지 말고 더욱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훨훨 휘날려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널 보고 온 아주 많은 사람들을 따스한 사랑의 길로 인도하길 바란다.”
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엠마의 눈은 빨개지며 금방 떨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눈물이 가득 고였다. 마크는 갑자기 하던 연기를 멈추고 엠마에게 다가갔다 “엠마, 괜찮아요?”
마크의 따뜻한 목소리의 엠마는 겨우겨우 참고 있던 눈물방울들을 그대로 모두 흘려버렸다.
“흐엉~엉엉… 흑 흑.. 끄억..” 엠마는 너무나도 많이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자세하면서도 따뜻한 말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더욱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마크는 허둥지둥 티슈를 찾으러 이 팀 저 팀을 기웃거리며 다녔고 멀리서 지켜보던 Sue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에 엠마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뭐라고 간단하게 적는 듯했다.
겨우겨우 어디서 티슈를 빌려온 마크는 엠마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엠마, 천천히 마음 진정해요”
“고마워요, 마크. 티슈도 아까 그 말도요. 진심으로 감사하고 따뜻했어요”
마크는 뿌듯한 얼굴로 키가 작은 엠마의 어깨를 두 번 토닥여 준 뒤, 허리를 펴고 encouraging을 이어나갔다.
엠마에 이어서 마크는 머들을 골랐다. 아무리 상황극이라지만 마크보다 한참은 나이가 많아 보이는 머들에게 ‘여보’라고 부르며 감동적인 말을 했지만, 한참 어린 남자가 본인을 자기,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오글거리는 상황을 참지 못한 머들은 계속 웃음을 터트렸고 결국 마크는 끝까지 말을 마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라고 나지막이 얘기하며 데이먼을 바라보는 마크에 얼굴은 웃음기가 전혀 없고 꽤 진지해 보였다. 그런 마크를 쳐다보는 데이먼의 눈빛엔 “저런 오글거리고 토 나올 것 같은 말들을 나한테 하기만 해봐라 그날이 너의 제삿날” 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으로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전혀 감정의 동요를 하지 않고 마크는 데이먼을 태연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데이먼, 제가 여기 당신을 위해 서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겠습니다”
모두 일제히 데이먼을 바라보았고, 얼굴이 새 빨개진 데이먼은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