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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자아 보고서

수리비 미정

by 빛나길



내 안의 자아가 고장 났다는 것을 안다. 이 고장의 원인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분명한 것은, 내 유년기에는 오지랖 넓고 정의로운 어른 한 명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된 지금, 내남없이 산다. 타는 목마름으로 더 이를 악물고 정의를 부르짖으며 사는지도 모른다.


나는 탐닉과 중독에 취약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다. 모든 것은 사소한 불량식품에서 시작됐다. 500원이 하루 용돈의 전부이던 시절, 50원짜리 '신호등' 사탕을 열 개씩 사서 수업 시간 내내 입에 물고 살았다. 학교 앞 '엿'을 사먹다 입술이 퉁퉁 부어오른 뒤에도 탐닉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여성암이 폐암 4기로 전이된 지금도 안방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금연을 시도한 지 하루 만에 손과 볼에 경련이 일어 실패했다는 그 모습과.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각은 아홉 살 무렵, 내가 아는 것을 어머니는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물쩡 넘기려던 그 순간에 확신이 되었다. 부모는 부덕했고, 나는 그 순간부터 한없이 모나기 시작했다. 결핍은 말초적인 쾌락을 좇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학대가 먼저냐 탐닉이 먼저냐 하는 모난 삶은 가혹한 폭력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불법 게임 CD를 사러 간 가게에서 어머니에게 끌려 나와 기절할 때까지 맞았다. 울다 지쳐 잠든 나를 아버지가 다시 깨웠다. 밀대 걸레를 부숴 만든 몽둥이로 옷을 벗긴 채 아파트 주차장에서 두들겨 팼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경비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온 내 눈앞에는, 저녁으로 끓여둔 된장찌개를 내 머리에 붓는 아버지가 있었다.


새벽에 망치로 얼굴을 맞으며 잠에서 깨어 본 적 있는가? 학습지를 다 풀지 않고 잠들면, 어머니는 내 얼굴을 밟아 깨워 기어이 숙제를 시켰다. 이런 가학의 기억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준 사람이 다섯도 채 되지 않는다고 푸념하곤 한다.


생존을 위한 반격은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되었다. 불우한 환경 탓에 학업 성취도는 늘 바닥이었고, 부모는 내게 청학동과 검도라는 선택지를 주었다. 당연히 검도였다. 비록 해동검도였지만, 타고난 운동신경 덕에 실력은 금방 늘었다. 어느 날, 또다시 이유 없이 나를 구타하는 어머니를 피해 대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목검으로 어항을 깨부수며 외쳤다. "다시는 이유 없이 때리지 마!"


그날 이후, 나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이 더 비겁하고 치사하게 느껴졌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본받을 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어른들의 모습. 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가정폭력이 남긴 낮은 학업 성취도는 늘 발목을 잡았다. 내겐 아직도 '가방끈 콤플렉스'가 있다.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늘 다른 형태의 위험으로 이어졌다. 스무 살, 재수 학원비를 삥땅쳐 스쿠터를 샀다. 거칠 것이 없었던 나는 내가 얼마나 살고 싶은지 확인하기 위해 배기량을 한없이 늘려가며 탔다. 50cc가 125cc가 되고 125가 400이 되었다. 200km/h는 우습게 여기며 스쳐가는 풍경들을 보며, 생의 한가운데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음을 느꼈다. 멋진 낭떠러지에 매달리는 매일이었다.


남들 다 가야 한다고 해서 갔던 대학은 한 학기 만에 그만두었다. 교수나 조교나, 지각했다고 하키채로 때리고 서른 넘은 조교가 스물 두 살짜리 여자애랑 사귀던 그곳에선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뛰쳐나온 세상은 정글이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일하며 사장에게 급여를 착취당했고, 호스트바와 성인오락실을 전전했다. 칠성파 건달이 명치를 때리면 X가드로 막아내며 '오!' 소리를 들었고, 복싱 체육관에서는 분노를 담아 관장의 눈에 멍을 만들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세상은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구에서 가장 큰 단란주점 지배인도 해보고, 용접부터, 막노동, 택배 상하차, 폰팔이, 배달까지 안 해본 일들이 없다. 그러면서도 태어나 단 한번도 유흥업소를 가본 적도, 담배를 펴본 적도 없다. 내가 적고도 이상하다 싶다.


이렇게 내 안의 기억들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고 나면, 늘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이 모든 순간들을 살아낸 나 자신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조금 더 좋은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하지만 후회는 과거에 남겨두려 한다. 마흔을 앞둔 지금, 나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술, 담배, 설탕을 끊고, 간헐적 단식을 하며,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에 '정의의 막내'를 자처하며 솔선수범한다. 고장 났던 몸과 마음을 끌어안고, 나는 매일 나를 다시 만들어간다.

이 글은 언젠가 완성할 자전적 소설의 밑그림이다. 철학을 공부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이 모든 과정이,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꿰어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여정이라 믿는다. 고장 난 자아에 대한, 그러고도 잘 살아가는 삶에 대한 길고 긴 수리 보고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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