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꼬까께. 꼬까께."
아이들이 발달하면서 꼭 하는 놀이가 있다.
바로 똑같은 걸 찾는 놀이다.
가장 흔하게는 똑같은 색깔을 찾거나 똑같은 모양을 찾는다. '똑같애'라는 말을 아직 정확히 발음하기도 어렵지만, 같은 것끼리 기가 막히게 잘 모으고 다른 것을 기가 막히게 잘 골라낸다.
아마도 서로 같고 다름을 찾는 것은 본능인 것 같다. 다만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약간 다른 문제다.
"이거랑 이건 어떻게 다르지?"
"너무 달라요."
"맞아. 너무 다르지."
언어치료에서 사물 간의 차이점을 말해보는 과제를 할 때마다 흔히 마주하는 상황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서너 군데 정도 짚어서 힌트를 주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시 묻는다.
"이거랑 이건 달라. 자, 어디가 다를까~요?"
"많이 달라요."
다른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다른지는 알기가 훨씬 어렵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아이들만의 어려움이 아니다. 나 또한 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다름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적이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남자친구와 싸울 때다.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
한 가지 사건을 갖고 얘기를 하는데, 희한하게 해석이 영 다르다.
우선은 나의 입장과 견해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본다. 하지만 혼신을 담은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도 기똥차게 정반대로 해석한다. 인내심을 갖고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말해보아도 찰떡같이 잘못 알아듣는다. 답답해서 속에 천불이 날 것만 같다.
내가 그와 다르다는 것은 잘 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데는 항상 실패한다. 둘 중 누구도 상대방을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려다가 얼마나 다른지로 귀결되고 만다.
"너무 달라.
확실히 안 맞아."
하지만 나도, 그도, 둘 다 속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수용되고 싶은 거다.
'그냥 나'로서 '그냥 너'와 함께 행복하고 싶은 거다.
정작 해야 할 일은 공통점을 인식하는 일이다. 비록 가치관이나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그러면 비로소 그 사람의 속마음이 보인다.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왜 그렇게 생각할까. 나로선 결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그의 삶의 방식이고, 그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누구든 자신의 고유함을 지적받으면 발끈하기 마련이다. 날선 말을 해대는 화난 얼굴 뒤에는 상처주지 말라고 아우성치는 연약함이 있다.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것보다는 다르다는 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편이 더 쉽다.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우리가 같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더 편하다.
아이들이 차이점과 공통점을 인지하고 나면, 다음 단계에서는 범주 어휘를 배우게 된다. 예를 들면 사과, 딸기, 포도는 모두 과일이다. 여기서 '과일'을 '상위범주어'라고 한다.
상위범주어는 꽤 어려운 인지적 개념이다. 상당히 다른 것들 가운데에서 공유되는 성질을 찾아내야 하는 작업이며, 이들이 공통된 속성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더 큰 범주를 형성함을 이해해야 한다.
상위범주어를 가르치다 보면 이런 상황을 겪을 때가 있다.
"사과, 딸기, 바나나. 이것들은 다 뭐지?"
"빵이 아니에요."
사과와 딸기, 바나나가 모두 과일이라는 개념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과가 빵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딸기와 빵이 다르다는 것은 안다.
여기서 나는 '다름'을 극복하게 해주는 위대한 비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사과, 딸기, 바나나가 있다.
사과는 바나나와 싸울 수도 있다. 왜 너는 빨간색이 아니라 노란색이냐고. 사과는 딸기에게 화를 낼 수도 있다. 왜 너는 씨가 안이 아니라 밖에 박혀 있냐고.
그러나 빵이 등장하면 비로소 알게 된다.
아, 우리는 모두 과일이구나.
그렇다. 공통점 찾기를 쉽게 해주는 꿀팁은 아-주 다른 것을 갖다대는 것이다. 매우 다른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덜 다른 것끼리는 서로 비슷해보이는 효과가 있다. 그렇게 비교적 '덜 다른' 것끼리 하나의 범주로 '똑같이' 묶일 수 있다.
요즘 나는 똑같은 걸 찾는 법을 잊어먹은 것 같다. 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 똑 떨어진 별종인 듯한 기분이다. 날이 갈수록 누군가 나와 조금이라도 다를라 치면 쉽게 불편해져버린다. 같음은 소소해보이고 다름은 치명적으로 보이는 탓이다.
무언가 너무 달라 보이는 게 있다면 당연한 일이다. 원래 다른 것이 눈에 더 잘 띄는 법이라 그렇다.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비슷한지는 차차 알아가도 좋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똑같은 것 찾기 놀이를 다시 해볼까 한다. 참 달라 보이는 사물들을 보면서, 나와 참 안 맞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일부러 한번 더 이 말을 되뇌어본다.
"똑같애. 똑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