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혜 Oct 22. 2023

당신도 배워야 할 대화의 기술

저도 배우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 들었어?"


사회성 그룹치료 중에 한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사실 내 질문은 답정너였다. 옆 친구에게 말을 거느라 내 말을 못 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우는 평소에도 다른 사람 말을 주의 깊게 듣기 어려워하는 아이다. 


"수업 중에는 선생님 보고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아이가 잡담을 멈추고 바른 자세로 고쳐 앉자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나는 각자가 맡은 재료로 바다 꾸미기 활동을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설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우가 끼어 들었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준비 운동을 잘해야 하잖아요!"


지우는 해양 안전을 포함해 모든 안전수칙을 꿰고 있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맥락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구나. 근데 우리 바닷속에 뭐가 있는지 얘기하고 있었는데. 

지우야, 지금 무슨 시간이야?"

"수업 시간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선생님 말 잘 들어야 해요."


나는 다시 수업을 이어갔다. 다함께 바다 꾸미기 활동을 하고 자연스레 놀이로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지우가 말하는 생선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얘기했다. 친구들이 깔깔 웃었다. 그때부터 멈추지 않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말하는 생선 이야기에서 다시 해양 안전수칙으로, 백상아리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로, 망치상어로, 고래상어로, 주제가 옆으로 샛길을 내며 끝없이 이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차마 말을 끊지는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애꿎은 바다생물 피규어만 만지작대고 있었다. 


"지우야, 다른 친구들을 봐. 어때 보여?"


그제서야 지우는 친구들을 둘러 살폈다. 


"......기분이 안 좋아요."


"왜 기분이 안 좋을까?"

"기분이 안 좋아서."


나는 다른 친구들의 표정을 살펴보고 기분을 파악하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친구들이 재미있어 보여, 재미없어 보여?"

"재미없어 보여요."


"그래? 친구들 재미없어 보여, 재미있어 보여?"

"재미없어 보여요."


"그치? 친구들이 재미가 없나봐. 선생님도 지우만 자꾸 얘기하니까 심심해."


지우는 상어 이야기를 멈추었다. 


다시 바닷속을 배경으로 친구들의 놀이가 이어졌다. 한창 놀이를 하다가, 어떤 친구가 울타리를 연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감옥 만들자. 상어가 나타나면 여기 숨어야 해. 나 이거 좀 줄래?"


"상어 중에 백상아리는 난폭하고 바다사자도 잡아먹고 사람도 공격해. 백상아리는 바다에서 제일 강한 포식자야. 백상아리랑 범고래랑 싸우면 어떻게 되지?"


친구는 끝내 "이거 좀 줄래?"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고, 다시 상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아이의 특징은 상대방 말에 주의집중하지 않고 대화 규칙을 잘 지키지 못하며,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대화 주제를 유지하지 못하는 점이다. 언어치료에서는 이것을 '화용 언어'의 문제라고 본다. 화용(話用)이란 '언어의 사용'을 뜻한다. 즉 사회적으로 적절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화용 언어가 부족한 건 꼭 지후뿐만이 아닌 것 같다. 주변에서 자기 말만 하는 어른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상대가 말을 할 때에 경청하기보다 언제 말이 끝날지, 자기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본인 위주의 대화를 이어간다. 마치 상대방을 본인 앞에 앉혀둔 방청객처럼 만들어 버린다. 일방적으로 길고 긴 발화를 이어가지만, 처음 주제가 일관되게 유지되는 일은 드물다. 


대화를 잘 하는 법을 모르는 어른도 언어치료를 받는 아이와 다를 게 무엇일까. 




부끄럽지만 나도 뜨끔했다. 최근 들어 남의 말에 관심이 없어졌다. 피로가 쌓여 여유가 없어진 탓인지 말소리자체가 피곤해서 티비도 잘 안 본다. 내가 말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건 내 사정이고, 명색이 언어치료사인데 요즘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반성이 되었다. 특히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지 못한 게 마음이 쓰였다. 


우리 부모님이 생각났다. 


딸만 둘인 우리 아빠는 나와 동생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항상 스윗하시다. 아무리 별 거 없는 얘기라도 아빠는 항상 잘 들어주신다. 아무리 시덥잖은 말을 해도 언제나 리액션을 성실히 해주신다. 정 해줄 말이 없으면 줄임말로 잘 들었다는 표시를 내주신다. 


"아, 오늘 기분 완전 좋앙"

"완좋완좋"


"어우, 추워. 어우, 너무 추어."

"넘춥넘춥"


웃기지만 별 내용이 없는 리액션이라도 그런 반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어떻게 한번 놓치지도 않고 다 듣고 매번 반응을 해주시는지 신기하다. 


그런데 과연 나는 아빠의 말을 경청했을까? 


퇴근 후 우리집 거실 소파에서는 가족들과 일과를 나누는 담소가 펼쳐진다. 부모님께서도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도란도란 얘기해주신다. 최근 들어 부모님의 말을 귀담아 듣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멍 때리게 되던 순간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치료에서 지우에게 우선 '다른 사람 말 잘 듣기', 즉 경청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첫 번째, 말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듣는다. 
두 번째, '그렇구나' 맞장구를 치거나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째, 딴 짓을 하거나 말을 끊지 않는다. 
네 번째, 상대방 말이 다 끝나고 나서 2초 쉬고 말한다. 


아이에게 경청에 대해 알려주면서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나도 가족들과 대화를 할 때 이중에 하나도 제대로 안 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마침 엄마가 이번주에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오늘 아이한테 언어치료를 해주면서 나도 함께 언어치료를 받지 않았던가. 나는 배운 대로 실천에 옮겨보았다. 


첫 번째, 엄마를 바라보고 듣는다. 

두 번째,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째, TV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네 번째, 내 얘기는 좀 쉬어 간다. 


하루 일과를 말씀하시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엄마가 얼마나 빛나는 눈으로 일 얘기를 하고 계셨는지. 


가끔 자기 자신을 챙길 여유도 부족할 때에는 타인을 살뜰히 살피는 것이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때에 부디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중에서도 

엄마, 아빠의 말을 세상에서 가장 잘 들어드리고 싶다. 





이전 04화 그 사람이 그렇게 소중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