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굴 탓하고 있진 않는가
아끼던 이어폰을 잃어버렸다.
고난주간의 새벽기도가 시작된 첫날이었다. 찬양을 위해 사용하고 탁자에 올려둔 그 물건. 어둠 속에서 기도를 위해 불 꺼진 예배당을 급히 나오며, 그 조그만 소지품 하나를 놓고 나왔다는 걸 깨달은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당연히 교회 어딘가에 있겠지 싶었다. 습관처럼 놓인 자리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오늘 찾아간 예배당엔 아무것도 없었다. 분실물도, 남겨진 흔적도.
교회에선 대개 누군가 놓고 간 물건은 제자리에 그대로 두거나, 목사님께 맡겨둔다. 나도 예전에 애플워치를 주워서 목사님께 가져다 드리고 주인이 찾아간 적 있다.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낯선 마음이 들었다. 예배를 마치고 아쉬운 마음에 다른 목사님께 여쭈니, 전날 구제사역으로 백오십 명쯤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예배와 식사를 준비한다. 그런 날엔 예배당이 북적인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 나는 그렇게 상상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는 않는가. 잠시의 욕심에 이어폰을 주워갔을지 모른다. 찾을 수 있다는 마음을 버렸다.
처음엔 나를 탓했다. 챙기지 않은 나의 부주의를. 그러다 이내, 누군가 가져간 그 손을 원망했다.
이상했다. 잃어버린 건 내 부주의 탓인데, 점점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화살이 향하고 있었다.
분실물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마음. 남이 챙겨주겠지 하는 기대. 내 책임을 조용히 밀어놓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안타까운 듯 고개를 흔들던 순간이 부끄러웠다.
사실 큰맘 먹고 산 비싼 이어폰이라 더욱 속이 쓰린다. 이어폰 하나로 마음이 이토록 흐트러지는 걸 보며 생각했다. 작고 값진 것을 잃고 나서 그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은 아침이었다. 책임에 대해, 태도에 대해.
그리고 한 가지 더.
내 손으로 떠나보낸, 내 마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 불편함을 느끼며 문득 하나님을 떠올렸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신 그분의 마음을.
작은 잃어버림 하나가 나를 묵상으로 이끈다. 고난주간의 아침, 이 조용한 사건이 내내 마음속을 뒤흔든다.
N5005 새 주인 만나 잘 지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