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빛날 수 있다
나는 인프제(INFJ)다.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선언이냐겠지만 MBTI 이야기다.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전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이 없을 때 MBTI를 묻곤 했다. '나는 솔로'라는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에서 옥순이 F냐 T냐를 계속 이야기해서 MBTI빌런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MBTI 간 궁합, 연애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MBTI는 흥미로운 대화주제가 된다.
나의 INFJ가 전 인구의 2% 미만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희귀종이라는 타이틀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평범함을 거부해 온 내게는 제법 어울리는 명찰이었다. 마치 누군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듯, 그럴듯한 설명들도 납득이 됐다.
다음은 INFJ의 특징이다.
ㅇ타인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림
ㅇ따뜻하고 섬세한 대화
ㅇ사교성이 많다는 오해
ㅇ평정심을 유지할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
ㅇ다른 이들의 감정을 섬세히 살핌
ㅇ영감이 발달되어 있음
ㅇ때론 4차원적 생각과 행동
ㅇ옳다고 확신하는 신념을 고수
ㅇ싫은 내색 못 함
ㅇ상처 잘 받음
ㅇ깊고 단단한 우정
ㅇ계획적이라 새로운 만남을 선호하진 않음
고개가 끄덕여지는 항목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이게 정말 '지금의 나'일까, 아니면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일까? 질문지를 다시 들여다보면, 나는 늘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주저한다. 현실 속에서 때로는 서투르고 모순적인 나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꿔왔던 이상적인 나. 그 경계에서 체크한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낸 INFJ는 어쩌면 내 자화상이자 동시에 내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자가진단이 가지는 장점이자 한계일 것이다.
깊은 통찰, 따뜻한 공감, 은밀한 고집. INFJ를 설명하는 말들은 듣기만 해도 뭔가 특별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내 모습은 그렇게 일관되지 않다. 어제는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은둔자가 되었다가, 오늘은 회의실에서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인다. 어떤 순간에는 상대방의 작은 표정 변화에도 쉽게 흔들리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냉정하게 데이터와 논리만을 앞세운다. 내 감정과 행동은 날씨처럼 변덕스럽다.
최근 들어서 데이터분석 전문인재 과정에서 했던 검사에서는 ENTJ라는 결과가 나왔다. 나는 이 현상을 '사회화된 I'라고 설명하고 싶다. 일을 위해 데이터와 근거를 붙들고 논리적 사고에 익숙해지다 보니, 예전에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던 섬세한 안테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날카롭고 명료한 분석력이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마치 INFJ 속에 숨어 있던 전략가가 ENTJ의 옷을 빌려 입고 세상에 나온 듯하다.
그렇다면 MBTI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를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일까, 아니면 단순한 재미거리일까? 시간이 흐르며 드는 생각은 MBTI는 상대방을 재단하는 꼬리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배경지식이라는 것이다.
"너는 왜 그렇게 조용해?"라는 비난 대신
"아, 저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는구나"라는 이해가 생긴다.
"왜 그렇게 말이 많아?"라는 짜증 대신
"저 사람은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구나"라는 받아들임이 가능해진다.
결국 MBTI는 우리를 평가하는 시험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커닝페이퍼인 셈이다.
물론 성격을 이해하는 방법은 MBTI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계에서 신뢰받는 심리검사는 빅파이브(Big5)다. 인간을 외향성, 성실성, 개방성, 친화성, 신경성이라는 다섯 가지 축으로 더욱 정교하게 설명한다. MBTI가 흑백사진처럼 "E냐 I냐"로 구분한다면, 빅파이브는 수채화처럼 점수의 농도로 미묘한 차이를 표현한다. 나는 논문 쓸 때 직장인의 Big5 성향에 맞는 역량강화 방법을 연구한 적 있다.
에니어그램은 또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MBTI가 행동 경향을 보여준다면, 에니어그램은 그 행동을 이끄는 내적 동기와 두려움을 드러낸다. 2번 유형은 사랑받고 싶어 하고, 5번 유형은 세상을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한다. 겉모습을 비춰주는 MBTI의 거울과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에니어그램의 창문이 나란히 놓인 다면 그 사람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명상수련에서 접하게 되는 에너지 종류도 있다. 인도의 전통에서 나온 차크라라는 개념인데, 몸과 마음을 흐르는 일곱 개의 에너지 중심점들을 이야기한다. 어떤 에너지가 강하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첫 번째 뿌리 차크라는 생존과 안정감에, 네 번째 가슴 차크라는 사랑과 관계에, 일곱 번째 정수리 차크라는 영성과 깨달음에 연결된다고 한다. 에니어그램이 우리의 방어 패턴을 보여준다면, 차크라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 균형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언어이지만, 모두 더 건강하고 온전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경계선 위를 걷고 있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하기에 I와 E 사이에서, T와 F 사이에서, 빅파이브의 점수들 사이에서, 에니어그램의 유형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한다. 물론 흑화 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칸에 자신을 가두는 고정된 시선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며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상황적 적응력'이라고 부른다.
결국 내가 INFJ든 ENTJ든, 혹은 그 사이 어딘가든 상관없다. 나를 설명하는 네 글자가 무엇이든, 내가 걸어온 길과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은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관되지 않아도, 때로는 모순적이어도 괜찮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든 나 자체로 빛이 난다. 나르시시즘을 걱정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빛깔로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서로 연결되며 함께 성장해 간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 애써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닐까.
당신은 참 보배로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