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흐름을 온전히 내 걸로 하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있다. 바로 하루 스물네 시간이다. 누구도 더 가질 수도, 덜 가질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안다. 똑같은 하루인데 어떤 이는 바람처럼 흘려보내고, 또 어떤 이는 단단한 무게로 쌓아 올린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태도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보통 다섯 시 반, 혹은 여섯 시쯤 눈을 뜬다. 창밖은 아직 희끄무레한데,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고요가 있다. 미온수를 한잔 마시고 식탁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놀라울 만큼 맑아진다. 전날까지는 풀리지 않거나 엉켜 있던 문제들이 그 시간대에는 신기하게 풀려 나간다. 대부분의 글쓰기는 이 시간대에 이뤄진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구조가 단번에 잡히고, 글의 첫 문장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하루 중 가장 선명하게 ‘집중’이라는 감각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람의 뇌는 아침 기상 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가장 활발하게 작동한다. 아침형 인간에게는 오전 두세 시간이 곧 황금 시간이다. 집중력, 문제 해결력, 논리적 사고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대. 반대로 오후가 되면 사고가 느슨해지지만, 대신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아이디어가 피어오르는 때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아침에 보고서를 쓰고, 오후에는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는 오전에 데이터를 분석하고, 오후에는 시를 쓴다. 뇌가 깨어나는 리듬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전혀 다르게 설계된다.
그런데 이 집중의 리듬을 붙잡기 위해 또 하나의 강력한 도구가 있다. 바로 산책이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생각은 점점 굳고, 호흡도 짧아진다. 그럴 때 가볍게 밖으로 나가 몇 분이라도 걸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일하는 직장 뒤편엔 산이 있고 산책로도 잘 만들어져 있다. 필요하면 언제든 걷기 좋은 공간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산책로는 내 애사심의 원천이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스치고, 햇살이 눈을 따뜻하게 비추는 순간 머릿속의 매듭이 풀리듯 사고가 확장된다. 철학자 니체는 “위대한 생각은 모두 걷는 동안에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칸트는 매일 오후 3시면 산책을 해서 사람들이 칸트를 보면 3시가 되었음을 알게 됐다는 일화도 있다. 이렇듯 많은 작가와 사상가들이 산책을 삶의 의식처럼 여겼다.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뇌에 새로운 산소를 불어넣어 사고를 새롭게 만드는 행위다. 의학 전문가들은 적당히 빠른 걸음이 가장 건강에 좋다고 한다.
나 역시 경험했다. 복잡한 보고서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답답해하다가, 잠시 시청 주변을 걸었다. 물들어 가는 가로수 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머리를 비우고 걷다 보니, 갑자기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 생각이 실마리가 되어 보고서 전체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도저히 나오지 않던 생각이 발걸음을 떼는 순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다.
집중은 이렇게 의도적으로 ‘호흡의 공간’을 줄 때 더욱 깊어진다. 아침의 맑은 시간에 몰입하고, 오후의 창의적 순간에 확산하며, 중간중간 산책으로 숨통을 트여주는 것. 하루라는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고 흘러가지만, 그것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삶의 무게가 달라진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나의 루틴을 밝힌다. 나에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아침 두 시간은 가장 중요한 일에 쓴다. 그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혹은 가장 복잡한 일을 맨 앞에 두는 것이다. 둘째, 오후 네 시 이후에는 창의적인 작업을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 구상은 이때 가장 잘 나온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집중하면 작업이 술술 풀린다. 셋째, 뇌의 몰입 주기인 90분을 단위로 시간을 자른다. 집중과 휴식의 호흡을 지키면 하루의 리듬이 무너지지 않는다. 넷째, 답답할 때는 반드시 걸어 나온다. 그 몇 걸음이 결국 머리와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마지막은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11시 30분을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자기 전엔 의식적으로 책을 손에 든다. 자기 전 스마트폰 사용은 블루라이트가 뇌를 자극해서 숙면을 방해한다.
이런 작은 습관들이 모여, 온전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스물네 시간을 만든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휴대폰 배터리는 출근 전 완충하면서 왜 내 몸의 배터리는 관리하지 않을까. 결국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하루는 금세 흘러가고, 누군가에게 하루는 오롯이 자기 삶을 채우는 한 페이지로 남는다. 당연하겠지만 여유와 휴식도 정말 필요한 시간이므로 억지로라도 챙겨줘야 한다.
우리는 매일 하루를 선물 받는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쓸 것인가. 에너지의 흐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아침의 맑은 집중력을 어디에 둘 것인가. 오후의 창의적 에너지를 무엇에 남길 것인가. 그리고 답답한 순간, 산책으로 다시 사고의 길을 열 수 있는가. 똑같이 주어진 스물네 시간이지만, 에너지를 주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떠올려 본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Lose an hour in the morning, and you will spend all day looking for it.”
아침의 한 시간을 잃는다는 것은 곧 하루 전체를 잃는다는 뜻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시간을 잡느냐, 놓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