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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환철 Apr 20. 2023

우리 집 생물이야기

내기 애정하는 물생물들

우리 집에 식생하는 생물은 크게 세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휴먼이다.

나와 아내, 그리고 큰 아들과 작은 아들(진짜 작아서 둘째라고 하는 걸 더 선호한다)


네명의 위계질서는 대체로 일관되지만 일순위인 아내를 제외하곤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다.

나와 아들들간 긴밀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외교를 펼치는 아내의 노련함이 그 원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생물학적 나이가 가장 많은 나는 가끔 권위를 세워보고자 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사춘기에 들어 선 빅 브라더와 논리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둘째는 가끔 말로 나를 겁박하기도 한다. 둘째가 궁지에 몰릴 때 펼치는 필살기인 서러움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둘째는 식물군이다.

이 그룹은 아내가 관장하지만 정기적인 풀샤워를 위해 나에게 욕실이나 베란다로 이주 요청(사실 명령)하곤 한다. 가끔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이 드는 부류이다. 신선한 공기를 위해서인지 휴먼의 정서를 위해선지 모르겠지만 한차례 정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꽤 많은 개체가 존재한다.


마지막은 작은 수조에 집단거주 중인 구피와 아이들이다.

이 지역의 터줏대감은 당연 구피다. 5마리에서 시작된 구피는 어느덧 50마리가 넘게 폭번했고 치어를 그들이 잡아먹는 비인륜적(하긴 사람이 아니니...)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전에도 한번 썼지만 이끼공격을 막기 위해 영월에서 공수한 올갱이는 강원도의 강한 기운을 바탕으로 로마가 부른 게르만족처럼 빠르게 자신들의 숫자를 늘리며 수조를 점령했다.

세차례에 걸쳐 이주민을 솎아서 300여 마리를 동네 냇가에 방생했지만 여전히 가장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한다. 이들의 번식력은 조만간 4차 이주를 준비하게 만든다.


물풀 3종은 아내의 잔소리에도 밤새 켜둔 불빛 탓인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예전엔 바닥 모래에 지지를 해놨는데 두번째 언급한 강원도의 힘에 처참하게 당해서 고사위기에 처하자 수조 상부로 거처를 옮겨 부유하고 있다.


최근 새식구로 합류한 영롱한 푸른빛을 자랑하는 벨벳새우는 네마리가 왔는데 항상 두마리만 관찰된다. 전 주인에게 애네들이 예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끔 보이는 걸로 봐서는 나름 적응해서 잘 살고 있어 보이니 다행이다.


세번째 수조 그룹의 총괄은 내가 하고 있고 가끔 둘째가 나를 돕고 있다. 요즘은 물멍(어항보며 멍 때리기)을 종종 하곤 하는데 먹이를 주면 부스터가 작동하는 활발한 구피의 움직임과 기아로부터 자기 새끼까지 먹으며 생존하는 생명에 대한 의지에서 내 삶의 의지를 북돋고 목표의식을 다잡는다.

폭발적으로 번식하는 영월올갱이는 떨어져도 다시 오르는 먹이를 찾기 위한 집요함과 이제는 대부분 이민2세대가 됐지만 고향 떠나 온 실향민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수초삼남매는 자기 살을 올갱에게 아낌없이 내주는 희생정신과 구피치어를 보듬어주는 온정을 생각하게 한다. 개체수를 측정할 수 없는 닌자새우는 먹이를 앞에 둔 세렝기티 초원의 숫사자와 같다. 필요에 따른 압축과 폭발이 삶의 에너지 관리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다음 주로 임박한 시험공부를 하기 싫어 쓴 잡담이 너무 길어졌지만 이 글을 적고나니 공부 할 의지가 생겼다. 이제 공부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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