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스마트폰과 AI의 '어색한' 만남
'갤럭시S9+'를 산 지 3개월 만에 빅스비 버튼을 껐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쓸 일도 별로 없는데 나도 모르게 버튼을 눌러 나타나는 갑툭튀 현상이 빈번했기 때문이죠. 3년 만에 스마트폰을 바꾸면서 가장 기대한 기능이 바로 빅스비였는데…, 불편하고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이젠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AI 비서, 얼마나 쓰시나요? AI 비서는 스마트폰 제조사와 인터넷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개발하는 기술입니다. 정보 검색은 물론 앱 실행, 메시지 전송 등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대부분 기능을 처리합니다. 심심할 땐 농담 따먹기 상대도 돼 주죠.
그런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AI 비서를 요긴하게 쓴다는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에 대고 시리, 빅스비, 클로바 등 AI 호출명령어를 말하는 사람도 본 적 없습니다. 과연 누가 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으로 AI 비서를 부르는 걸까요? 광고 영상에서나 볼 수 있는 먼 미래의 일인 걸까요?
심지어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선보인 '갤럭시S8' 시리즈부터 빅스비 전용 버튼을 탑재했습니다. 스마트폰 제조사 중 최초였죠. 그렇지만 전용 버튼 탑재로 빅스비를 더 자주 쓰게 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제품이 출시되기 전부터 빅스비 버튼을 해제하는 방법이 이슈가 되기도 했었죠. 워키토키 감성을 내세운 삼성전자의 전략은 아직까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갤럭시S9' 시리즈가 공개되기 전 빅스비 버튼이 사라질 것이란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죠. 하지만 예상과 달리 빅스비 버튼은 살아남았습니다.
스마트폰에서 AI 비서의 흥행 참패는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합니다. AI 비서는 말 한마디에 척척 움직이지만, 우리에겐 아직 터치가 익숙합니다. AI 비서가 터치로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사람은 하루 종일 다른 이들과 대화합니다. 서로 말하기 위한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 스마트폰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도 컴퓨터와 음성으로 소통하는 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아닌 이질감, 사용환경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터치 인터페이스가 너무나 익숙하고 편리하다는 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유입을 이끄는 킬러 콘텐츠 부족 역시 AI 비서를 잘 부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최근 빠르게 퍼지고 있는 AI 스피커 역시 같은 문제에 처해 있죠. AI 스피커 시장의 선두주자 아마존이 개발한 AI 비서 알렉사의 스킬(음성 명령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은 1만개를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스킬은 △타이머 설정 △음악 청취 △뉴스 청취 △알람 설정 △시간 확인 등 초반부터 제공한 기본 기능 몇 가지에 불과하죠. AI 스피커로 하면 좀 더 편하지만, '꼭 써야 겠어'라고 생각할 기능들은 아닙니다. 아무리 AI 스피커가 잘 팔린다 해도 현대인의 필수 기기로 거듭났다고 보긴 어렵죠.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AI 비서를 부르는 시대가 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빅스비 전용 버튼과 같은 노력을 통해 우리의 습관을 바꿔야 하고, 지속적인 기술 발전으로 꼭 써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죠. 스마트폰 AI 비서의 음성인식 능력이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고, AI 스피커가 디스플레이를 탑재하는 형태로 진화하는 모습이 바로 그런 노력입니다.
집과 자동차, 가전제품 등 모든 게 연결되는 진정한 만물인터넷(IoE) 시대가 온다면 스마트폰, 스피커 등 특정 기기 기반의 AI 비서는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늘 주변에 있는 AI 비서가 허공에 대고 말해도 명령을 수행한다면 말이죠. 언젠가 찾아올 그 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도 다시 빅스비 버튼을 켜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AI 비서뿐 아니라 사람의 학습도 필요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