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주차]#인텔 #파운드리 #트럼프
안녕하세요. 서진욱 기자입니다.
세계 최대 종합 반도체 기업 인텔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하루 만에 주가가 30% 가까이 폭락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는데요. 인텔의 미래를 우려하는 시각이 번지면서 대규모 투자자 이탈로 이어졌습니다. 인텔이 직면한 재무 위기는 단기간 내 극복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팻 겔싱어 CEO가 야심차게 추진한 파운드리 사업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면서 인텔의 실적이 크게 악화됐는데요.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음에도 지금까지 성과는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반도체 산업 부흥 노력에 나선 미국 정부는 인텔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번 뉴스레터는 인텔의 위기를 종합해서 정리했습니다.
인텔 주가 26% 폭락, 1974년 이후 최대 하락률
실적 줄고 주가 떨어지고… AI 열풍에서도 소외
막대한 적자 내는 파운드리… 미 반도체 부흥에 악영향
너무 멀리온 파운드리, 2018년처럼 철수 어렵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지난 2일(현지 시각) 나스닥에서 인텔은 전날보다 26% 떨어진 21.48달러에 거래를 마쳤는데요. 1974년 31% 폭락 이후 최대 하락률로, 주가가 2013년 4월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시가총액은 918억달러(125조원)로 급감했는데요. 지난주 금요일 주가가 10% 폭락한 SK하이닉스(126조원)보다 적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어닝 쇼크에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겹치면서 인텔에 대형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인텔은 2분기 매출 128억3000만달러, 순손실 16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는데요.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1% 줄었고, 순손익은 적자로 전환했죠. 인텔은 3분기 매출 125억~135억달러, 주당순손익(EPS) 0.03달러 적자를 예상했는데요. 2분기 성과와 3분기 전망 모두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습니다.
인텔은 위기 극복을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 방침을 밝혔습니다. 전체 직원의 15%에 달하는 1만5000명을 해고할 예정인데요. 레이오프(테크기업 해고 통계 집계 사이트)에 따르면 인텔의 감원 계획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 3월 이후 단일 기업 최대 규모입니다. 2022년부터 지금까지 인텔이 해고한 직원을 모두 합쳐도 5000명이 안 되는 점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결정이죠.
인텔은 1992년부터 지급한 배당금을 올해는 지급하지 않고, 연간 자본 지출을 20%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장 매출 성장이나 수익성 개선이 어려우니 비용 감축에 집중한다는 건데요. 당연히 인텔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졌고, 투자자들의 대탈출로 이어졌습니다.
인텔의 위기는 갑작스럽게 불거진 일이 아닙니다. 주가와 실적만 봐도 암울한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죠. 인텔은 올해 1~7월 주가가 39% 떨어졌는데요. 엔비디아 136%, TSMC 59%, 삼성전자 7%, AMD -2%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 비교하면 크게 뒤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25% 상승한 점을 봐도 인텔의 나홀로 추락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적은 계속 줄었습니다. 매출은 2021년 790억달러, 2022년 631억달러, 2023년 542억달러로 2년 만에 31% 감소했죠. EPS는 2021년 4.9달러, 2022년 1.9달러, 2023년 0.4달러로 급감했는데요. 실적 부진이 하반기에도 이어진다면 올해 EPS 적자를 피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인텔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비용 감축이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느냐가 변수죠.
엔비디아가 이끈 전 세계적인 AI(인공지능) 반도체 열풍에서 인텔만 소외됐는데요. AI 반도체 제조 등이 포함된 데이터센터와 AI 부문의 2분기 매출은 30억5000만달러로 시장 전망치 30억7000만달러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인텔은 올해 4월 차세대 AI 가속기 '가우디 3'를 공개하며 품귀 현상에 빠진 엔비디아의 'H100' 대체 수요를 노렸는데요. 인텔은 엔비디아보다 30% 싸게 제품을 공급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시장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AI 개발 플랫폼 '쿠다(CUDA)' 기반으로 독점 생태계를 구축한 엔비디아와 경쟁하기엔 역부족이었죠.
팻 겔싱어 인텔 CEO가 2021년 내건 'IDC(종합 반도체 기업) 2.0' 전략의 핵심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선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파운드리 영업손실은 2022년 52억달러, 2023년 70억달러에 달했는데요. 총 122억달러로 17조원에 육박합니다. 올해도 적자 행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1분기 25억달러, 2분기 28억달러로 상반기 영업손실만 53억달러(7조2160억원)에 달합니다. 올해 들어선 매출 성장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파운드리 고객사를 대거 확보하겠다는 당초 포부와 달리 대부분 내부 주문인 점도 문제입니다. 그동안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무색한 상황입니다. 최근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 책임자를 마이크론 출신 나가 찬드라세카란 COO(최고운영책임자)로 교체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죠. 이대론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린 거죠.
인텔이 직면한 위기는 인텔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이 강력하게 추진해 온 반도체 부흥 정책의 중심에 인텔이 있기 때문이죠. 인텔은 미국 반도체 산업 지원 근거를 담은 칩스법(반도체와 과학법)의 최대 수혜 기업인데요. 올해 3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위치한 인텔 공장을 직접 방문해 최대 195억달러(26조5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보조금과 대출 지원을 발표했습니다. 파운드리 경쟁자인 TSMC 116억달러, 삼성전자 64억달러와 비교하면 인텔 지원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죠.
인텔이 대규모 구조조정과 비용 감축에 돌입하면서 정부에 확약한 국내 투자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텔은 미국 정부 지원 규모가 발표될 당시 향후 5년간 1000억달러(136조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는데요. 애리조나주, 오하이오주, 뉴멕시코주 등에서 팹(반도체 생산시설) 신설과 시설 현대화를 단행하는 게 핵심 내용입니다. 창사 이래 최대 재무적 위기에 직면한 인텔이 천문학적인 투자 약속을 그대로 지키긴 어려워 보입니다. 인텔의 위기는 2030년까지 세계 첨단 반도체의 20%를 자국에서 생산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목표 달성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죠.
정치 변수도 존재합니다. 최근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칩스법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대만 기업인 TSMC를 겨냥했지만 인텔도 안심할 순 없습니다. 트럼프 측에선 올해 3월부터 이뤄진 반도체 지원 발표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노림수로 활용됐다고 보기 때문이죠.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인텔 지원을 발표한 장소인 애리조나주가 대표적인 경합주인 점도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혹을 키웠죠. 만약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반도체 기업들은 새로운 보조금 계산서를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인텔이 2018년처럼 파운드리 시장에서 철수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어렵습니다. 인텔은 올 초 인텔파운드리(생산)와 인텔프로덕트(설계)의 양대 그룹 체제로 조직 개편을 마쳤습니다. IDM 2.0 전략 이행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마친 건데요. IDM 2.0은 2021년 인텔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겔싱어 CEO가 진두진휘한 자구책입니다. 그가 퇴장하지 않는 이상 전사적인 역량을 투입한 청사진을 폐기하는 일은 벌어지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은 미국의 반도체 부흥 정책과 직결됐기 때문에 인텔 마음대로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흐름 속에서 인텔은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기업으로 꼽혔는데요. 미국 정부의 지원 몰아주기 효과를 보려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해 정상궤도에 재진입해야 합니다. 과연 인텔은 전방위적 위기를 극복하고 반도체 명가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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