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차러 갔다 '빡쳤다'

황당한 당일 대관 취소 사태, 조기축구인들의 상실감이란…

by 샤인웨이
KakaoTalk_20190608_204049416.jpg 공 차러 갔는데 빡치는 상황.


'지금 운동장에서 그물막 설치 공사 하는데.'


축구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자마자 짜증이 확 밀려왔다. 또 오고야 말았구나.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당일 구장 취소 사태. 혹시나 경기 시작 전 공사가 끝나진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감을 가졌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걸 알면서도.


감독이 어렵게 학교 대관 담당자 연락처를 알아냈다. 유선전화나 온라인으로 대관 신청을 받기 때문에 담당자 휴대전화 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담당자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자비롭게 운동장 대관을 윤허한 담당자는 "깜빡 했다"고 했단다. 가로등이나 신호등도 아닌데 깜빡이란 단어를 쓰시다니. 운동장 대관과 그물막 공사 중 어떤 일이 먼저였는진 모르겠지만, 대관 취소를 미리 알리지 못했다는 거다. 우리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공사 일정을 잡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생략됐다.


감독 얘길 들어보니 가관이다. 죄송하다던 사람이 "20명 넘게 모였는데 어떻게 보상할 거냐?"는 말에 목소리가 싹 달라졌단다. 뭘 원하냐면서 오히려 따졌다고. 우린 그냥 돈 내고 빌린 시간에 공 차는 걸 원한다. 합당한 대가를 지불한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으니 보상책을 달라는 게 화낼 일일까.


이런 황당한 일,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년에 적어도 2~3번 벌어진다. 지난 번엔 일본어능력시험이 경기를 가로막았다. 몇 달 전 예정된 시험일, 그 때도 (다른 학교) 담당자가 깜빡했다. 전화 한 통 아니 문자 한 건이면 되는데. 그게 참 어렵나 보다. 공 차러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것만큼 허탈한 일도 없다. 경기에서 크게 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상실감을 안긴다.


뭘 원하냐며 따졌던 담당자가 감독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대관료 환불과 무료 대관 1회를 제안했다. 그의 태도에 분노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충분한 보상이어서? 아니다. 다시 구장을 잡아야 하는 입장에서 담당자와 등지는 건 '대관 불가'를 뜻한다. '절대을'인 조기축구인들에겐 거부할 권한이 없다.


어쨌든 운동장을 쓸 수 없단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기를 치를 상대 팀을 초청한 터라 참 당혹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옆 초등학교 운동장이 비어 있었다. 감독과 수석코치가 행정실에 찾아가 읍소해 극적인 대관에 성공했다. 정말 오랜 만에 흙바닥에서 뛰었다. 경기 끝날 때까지 미끄러운 그라운드 사정에 적응하지 못했다.


경기 결과는? 심리적 타격 탓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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