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공 차러 나가다

by 샤인웨이

홀로 공 찰 때가 있다. 방바닥 뒹굴다가 문득 축구 생각이 절실해지면 공과 축구화를 집어든다. 꽤 긴 시간 동안 공을 차지 못했거나 내 플레이에 크게 실망한 직후라든지, 이유는 다양하다. 몇 시간 전까지 계획에 없던 충동적인 나들이다.


당장 공 차고 싶다고 동네 골목에서 뛰어놀 순 없다. 그러기엔 낯부끄러울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어쩌나. 동네 아주머니의 목격담이 엄마 귀로 들어간다면 갑작스런 등짝 스매싱을 맞을 수 있다.


나만의 연습장을 찾아야 한다. 눈치 안 보고 안전하게 공 찰 수 있는 곳. 최적의 장소는 학교 운동장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운동장을 개방하는 학교를 찾기 어려워졌다. 매일 사건사고가 터지는 험한 세상 탓이겠지. 어렸을 땐 담 넘어 들어가 뛰어놀던 추억이 생생하지만, 이젠 돈 내고 빌려야 들어갈 수 있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공간이 됐다.


학교 운동장을 제외하면 후보지가 그리 많지 않다. 오가는 사람이 적고 충분하고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공간. 혼자 공차고 받을 수 있는 적당한 벽 필요하다.


신림동 시절 나의 연습장은 도림천변이었다. 자전거도로, 보행로를 빼고도 공간이 넓어 혼자 공 차기엔 알맞았다. 벽치기하기 충분한 벽까지 있는 만족스런 공간이다. 넘어지면 피를 보는 콘크리트 바닥은 조금 아쉬웠지만. 개천으로 공이 빠질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었지만, 오히려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훈련 장치이기도 했다. 실제로 개천에 공 빠뜨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개천 옆에서 농구, 배드민턴, 줄넘기, 물구나무 서기(실제로 봤다) 등 자신만의 취미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 공 차는 부끄러움도 덜하다.


얼마 전 상왕십리로 집을 옮긴 뒤 처음으로 '혼축'(혼자 축구)에 도전했다. 주말 여행으로 조기축구에 나갈 수 없었고, 다이어트를 위해 땀도 흘려야 했다. 여러 가지로 공 찰 이유가 많았다. 평일 밤 귀차니즘을 물리치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집 앞 아파트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트 가는 길에 자리잡은 공간, 놀이터 옆으로 풋살경기가 가능할 정도로 큰 공터가 있었다. 이 곳을 지나칠 때마다 혼축하기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실행에 옮긴 건 이번이 처음. 좀 어두웠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낮은 벽이 아쉬웠지만, 땅으로 깔리는 패스 연습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드리블, 트래핑, 패스, 시야 등 평소 유튜브 축구 채널에서 봤던 동작들을 따라했다. 역시나 영상과 현실은 달랐다. 언제 이렇게 몸이 굳고 느려졌을까. 한탄하면서 공 차다 보니 30분이 금새 지났다. 두 다리가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체력 방전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마무리는 트래핑 20번으로 정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해보면 안다. 아마추어에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20번은커녕 10번을 채우지 못하기 일쑤였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분통이 터질 때쯤 '그냥 갈까'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사실 그냥 가도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 놈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하다 보니 조금씩 횟수가 늘어난다. 5번, 8번, 13번, 17번 차근차근 20번에 가까워진다. 결국 30분 만에 20번을 채웠다! 집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혼축하고 돌아오는 길, 그다지 축구 실력이 는 것 같진 않지만 뿌듯했다. 축구와 한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한밤중 혼축,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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