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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웨이 Nov 02. 2019

축구화를 추억하며

왼쪽부터 경기용 축구화, 풋살화, 연습용 축구화.


공 차는 이들에게 축구화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다. 함께 운동장을 누비는 동반자이자 축구 추억을 회상하는 매개체랄까. 카레이서가 자동차, 사공이 낚시대에 지나친 애착을 갖듯 축구인은 축구화를 사랑한다.


구두는 없어도 축구화는 있었다. 골목에서 공 차던 시절, 축구화가 뭔지 잘 모를 때를 제외하면 신발장 한켠은 언제나 축구화 자리였다. 가끔 신발장이 만석일 때면 신발주머니로 쫓겨난 적도 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축구화와 만난 건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엄마 손 잡고 전통시장 신발가게에 가서 생애 첫 축구화를 손이 아닌 발에 넣었다. 싸구려 축구화였지만 하늘을 날듯이 기뻤다. 축구화 신고 슛 차면 무조건 골이 들어갈 것 같았다.


첫 축구화를 운동화처럼 신었다. 그 땐 그게 유행이기도 했고, 아무때나 공 찰 수 있어 편하기도 했다. '나 축구 하는 사람이야'라는 표식이랄까. 편한 만큼 빨리 닳았다는 게 문제다. 생애 첫 축구화와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동안 내 발을 거쳐간 축구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녀석은 고등학생 때 신은 '카이' 축구화다. 카이는 당시 LG텔레콤의 이동통신 브랜드였다. LG텔레콤에서 축구화를 만들 일이 없으니 당연하게도 짝퉁 제품이었다. 이제서야 카이의 의미를 알았는데 그리스어 알파벳의 22번째 철자란다. (아무튼 그렇단다.)


카이 축구화의 고향은 동네 신발 할인매장이다. 같은 반 친구는 주황색, 난 흰색을 골랐다. 용돈 모아 산 첫 축구화였기 때문일까. 화이트 바디와 파란 카이 마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검정색사던 내가 흰색 축구화를 택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카이 축구화를 신었다. 아쉽게도 사진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 이미 사라진 할인매장 앞을 지날 때면 불현듯 카이 축구화가 떠오른다.


이젠 용돈 모으지 않아도 언제든지 축구화를 살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축구화를 보면 설렌다. 축구화와 함께 뛸 초록색 그라운드가 떠오른다. 글 쓰다 보니 축구화를 사고 싶다. 신발장을 여니 축구화 3켤레가 나를 한심하듯 바라본다. 알았어, 너희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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